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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의 올림픽사를 다시 써내려가던 신태용호의 도전은 아쉽게 막을 내렸다.
졌지만 잘 싸웠다.
신태용호는 사실 전망이 밝지 않았다.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4년 전 런던 대회 멤버와 비교될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시 기성용(스완지시티) 구자철 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등이 23세 이하에 포진했다. 와일드카드에는 박주영(서울) 정성룡(가와사키) 포진했다. A대표팀 급 올림픽팀이었다.
그 결과 신태용호는 역사의 중심에 섰다. 첫 발걸음부터 심상찮았다. 피지를 무려 8대0으로 대파하며 한국 축구사를 재정리했다. 올림픽 본선 1차전에서 승리한 것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이후 20년 만이었다. 최다 득점과 최다골 차 승리를 갈아치웠다. 최단 시간 3득점(1분 45초), 올림픽 포함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최초 남자 해트트릭(류승우) 등도 탄생했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최종예선에서도 환희의 여정은 계속됐다. 멕시코를 1대0으로 제압한 신태용호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또 조별리그 최다골과 최고 성적(승점 7점·2승1무)도 경신했다. 악순환의 고리 마저 끊었다. 반복된 환희→눈물의 '징크스'가 깨졌다. 환희→환희로 이어졌다. 2회 대회 연속 8강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초 또 최초가 꼬리를 물고 있다.
'골짜기 세대'라고 낙인 찍힌 그들이 일으킨 대반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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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화를 창조하던 골 결정력이 신태용호의 발목을 잡았다. 객관적으로 한 수 아래인 온두라스의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에 대비했지만 결국 골문을 여는데 실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져 아쉬움을 눈물을 흘렸다. 특히 손흥민은 2년 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도 희망이 피어 오른다. 이들의 눈물은 분명 한국축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4년 뒤 후배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쉬움, 발전의 시작이다.
벨루오리존치(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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