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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 수원더비를 '명품'으로 만든 두가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05-15 18:44



경기장 밖의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반대편 스탠드에 앉아 서로 다른 팀을 응원했다. 경기장 안에서는 누가 수원의 진짜 맹주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거침 없는 몸싸움이 펼쳐졌다.

14일 수원이라는 이름 아래 공존하는 수원FC와 수원 삼성이 만난 첫번째 수원더비는 '진짜배기'였다. 축제의 흥겨움부터 전쟁 같은 치열함까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았다'. 흥행부터 경기력까지 나무랄데가 없었다. 이날 수원종합운동장에는 1만1866명의 관중이 찾았다. 경기장 수용 인원 이상의 관중이 입장하면서 프로축구연맹의 관중수 집계 발표가 늦어졌을 정도. 수원종합운동장을 가득채운 팬들은 더비의 진수를 만끽했다. 후반전에는 스탠드에 엉덩이를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이어졌다. 치열한 공방 속 최후의 승자는 수원 삼성. 이 달콤한 결과물로 수원 삼성은 수원 시청 사거리부터 문화의 거리까지 이어지는 '승자의 거리'에 깃발을 걸게됐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진짜 더비'란 선물을 받게된 수원 시민들과 축구팬들이었다. 첫 걸음을 뗀 수원더비는 '명품 더비'의 가능성을 알렸다.


사진제공=수원 삼성
명품 주연1. '형님' 수원 삼성의 격이 다른 서포팅

마치 '어서와. 이런 서포팅은 처음이지?'라고 외치는 듯 했다. 클래스가 달랐다. 장소는 수원FC의 홈구장인데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온 듯 했다. 수원 삼성의 서포터스 '프렌테 트리콜로'의 웅장하고 조직적인 응원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수원FC의 김병오는 "우리 원정 관중석이 꽉 찬 것은 아마도 처음일거다. 수원 삼성 서포터스의 응원에 우리 서포터스가 움츠러들고, 기가 눌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프렌테 트리콜로는 수원 더비에 많은 공을 들였다. 400여명의 서포터스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종합운동장까지 40여분을 도보로 행진했다. 수원종합운동장은 수원 삼성 서포터스에게도 특별한 곳이다. 2001년까지 수원 삼성의 홈이었다. 수원 삼성의 서포터스는 당시 그랑블루라는 이름으로 수원종합운동장을 뜨겁게 만들며 K리그에 새로운 서포터스 문화를 심었다. 프렌테 트리콜로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수놓던 푸른 물결을 추억의 옛 터전으로 가져왔다.

가변석에서 깃발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던 '아우' 수원FC의 서포터스 '리얼 크루'는 '형님' 수원 삼성의 서포터스에 완패했다. 이날 프렌테 트리콜로는 3000명 이상을 동원하며 세력을 과시했다. 슈퍼매치 원정경기 수준의 인원이었다. 첫 더비, 수원 삼성의 힘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이것이 바로 수원 삼성이 20년 넘게 수원을 지켜온 힘이라고…. 경기 전 현역시절 뛰었던 수원종합운동장의 복도를 서성이던 서정원 수원 감독도 팬들의 힘을 제대로 받았다. 그는 "여기가 원정이라는 기분은 못 느꼈다. 홈인 것 같았다"며 "경기 하러 오기 전부터 마음이 편했다. 동점골을 먹고 나서도 덤덤했다. 추가 득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뜨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순전히 팬들의 노력이다. 수원 삼성이 보여준 서포팅의 힘은 더비의 참맛을 한껏 끌어올렸다.


명품 주연2. 물러서지 않은 '아우' 수원FC의 막공


경기 전 분위기는 수원 삼성의 완승이었다. 조덕제 수원FC 감독도 "6라운드 전이면 해볼만 했겠지만 지금 수원 삼성은 많이 올라온 상태"라고 했다. 수원 삼성이 경계하는 것은 수원FC의 전력 보다는 '약한 상대'와 더비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이었다.

실제 경기는 그렇게 진행되는 듯 했다. 수원 삼성의 조직력은 수원FC를 압도했다. 전반 26분 산토스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한 골이 아쉬울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수원FC의 움직임은 무기력 하다 싶을 정도로 답답한 모습이었다.

후반 들어 조덕제 감독의 한마디가 선수들을 깨웠다. "후반전도 전반전과 같이 하면 이게 무슨 더비냐. 많은 관중 앞에서 그래도 수원FC가 괜찮은 팀이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자신 있게 하자." 마법처럼 수원FC 선수들은 후반 거짓말 처럼 달라졌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수원FC 경기력이 살아나니 그제서야 더비 다워졌다.

특히 김병오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챌린지 충주 험멜에서 온 김병오는 강력한 피지컬과 넘치는 파워를 바탕으로 수원 삼성의 측면을 허물었다. 김병오는 후반 26분 왼발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좌충우돌이지만 무언가를 해줄 것 같은 기대감을 심어주는 김병오의 활약으로 관중석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수원FC는 수차례 수원 삼성의 골문을 두들겼지만 득점에 실패했다. 정작 득점에 성공한 것은 수원 삼성이었다. 후반 38분 염기훈의 프리킥이 그래도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조덕제 감독은 후반 35분 이후 극장골로 이기겠다고 했지만, 실제 웃은 쪽은 수원 삼성이었다.

양팀 합계 16개씩, 무려 32개의 슈팅이 터진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 특히 강등권 속에서도 승점 1점의 유혹을 참고 스리백 카드를 접은 수원FC의 패기에는 박수를 보낼만 하다. 수원 삼성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는 수원FC의 힘은 수원 더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희망이다. 경기 후 김병오의 한마디는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원정에서는 받은만큼 돌려주겠습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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