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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스페인)=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이승우(18·바르셀로나B)는 스타트라인에 섰다.
이승우는 2013년 2월 국제축구연맹(FIFA) 징계로 3년간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훈련만 참가했다. 한국 대표팀 경기만 뛸 뿐이었다. 지난해 9월부터는 바르셀로나에서 훈련도 불가능해졌다. FIFA가 징계 수위를 높인 것.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야만 했다. 은사인 조덕제 감독의 배려로 수원FC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1월 6일 이승우는 18세 생일을 맞이했고 FIFA의 징계도 풀렸다.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뛸 자격이 생겼다. 정식 프로 계약도 맺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이승우는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모두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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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프로 데뷔전까지 치렀지만 이승우는 담담했다. "성인 무대 데뷔까지 많이 도와준 구단에게 감사하다. 그런데 큰 감흥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원래 바르셀로나B와는 훈련을 많이 했다. 데뷔에 대한 기쁨보다는 팀이 지고 있었기에 골을 넣어 승리로 이끌고 싶었다. 져서 아쉽고 슬프다"고 말했다.
냉엄한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우 앞에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바르셀로나B는 통과지점에 불과하다. 1차적인 목표는 1군 합류다. 더 나아가 바르셀로나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 이승우의 바람이다. 쉽지는 않다. 바르셀로나는 세계 최고의 구단이다. 조금만 부진한 모습을 보여도 당장 아웃이다. 지금도 라 마시아(바르셀로나 유스시스템)에서는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고 마냥 감상에 빠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자신감
1군 합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무기는 두가지다. 하나는 '실력' 또 다른 하나는 '자신감'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이승우는 13세 때인 2011년 바르셀로나로 왔다. 언어도 안됐다. 문화도 낯설었다. 적응이 어려웠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도 있었다. 버티자고 이를 악물었다. 이승우는 "매해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나는 그저 여기서 짤리지만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사춘기 시절도 없었다. "중2병이라고 불리는 사춘기를 지난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말한 이승우는 "정말 경쟁이 심한 곳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방출될 수 밖에 없다. 착하고 모범생 스타일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자신감마저 없으면 이곳에서 성공할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강하게 내 자신을 보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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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데뷔 후 이승우의 마음 속에는 새로운 단어가 하나 생겼다. '책임감'이다. 이승우는 "프로 계약을 하고 프로 경기에 나가니 생활이 달라졌다. 라 마시아에서는 공부도 하고 합숙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라 마시아에서 나왔다. 주위 선수들도 프로페셔널해진 느낌이다. 이제는 내가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팬들의 사랑에도 보답해야 한다. 후베닐A 경기를 할 때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온다. 경기 장소나 시간등의 정보도 찾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이승우는 "조금은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많이 응원해주시는 것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우선 2016년 리우 올림픽이 코 앞이다.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14일 "이승우는 내 머릿속에 없다"고 선을 그엇다. 하지만 가능성도 열어뒀다. 신 감독은 "성인 경기를 뛰고 있기에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지 지켜보겠다. 필요하고 보탬이 된다면 뽑을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승우도 신 감독의 발언에 동의했다. 그는 "올림픽에 대한 당장의 미련은 없다"며 "바르셀로나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민감한 질문을 피하기 위한 '원론적 대응'은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정답이었다.
다만 한국에서 열리는 2017년 20세 이하 월드컵에는 욕심을 냈다. 이승우는 "그런 큰 대회를 한국에서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우승까지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