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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정몽규 회장의 낙선, 더 낮은 지혜가 필요하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5-05 17:45 | 최종수정 2015-05-06 07:01


◇5일 파주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어린이 날 행사에 참석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결국 그들이 짠 갱대로 완성됐다. 한국 축구는 외교 무대에서 다시 한번 쓴잔을 삼켰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FIFA 부회장 선거에서 5선에 실패하며 한국 축구는 '외교 암흑기'를 맞았다. '사촌 동생'인 정 회장이 4년 만에 FIFA 재진입을 노렸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왜 FIFA일까. 축구는 민족성이 강한 스포츠다. 4년 마다 열리는 월드컵이 거울이다. 민족이 충돌한다.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선 외교력은 무시할 수 없다. 25명으로 구성된 FIFA 집행위원회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들의 입맛대로 지구촌 축구가 재편된다.

정 회장은 함정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을 비롯한 대륙 연맹은 사슬처럼 얽혀 있는 거대한 '마피아 조직'과 흡사하다. 한 번 잡은 기득권은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79세인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4년 전 선거에서 이미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지만 당당히 5선 도전에 다시 나섰다. FIFA 회장 선거는 29일 열린다. 이변이 없는 한 그는 5선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와 남미가 이미 블래터 지지를 선언했다.

이번 AFC 총회에서 열린 선거에서도 거대한 카르텔이 형성됐다. 블래터 회장이 배후라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AFC 회장 연임에 성공한 세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회장(바레인)과 세이크 아흐마드 알파라드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쿠웨이트)이 북치고 장구쳤다. 알 칼리파 회장은 AFC 회장 몫으로 FIFA 집행위원이 됐다. 2년 임기에 단독 출마한 알 사바 회장은 무혈입성했다. 이들과 손을 잡은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 부회장과 텡쿠 압둘라 말레이시아축구협회장은 투표 끝에 4년 임기의 FIFA 집행위원에 당선됐다. 47개 AFC 회원국 가운데 46개국 대표가 투표에 참가했다. 1개국이 2표를 행사했다. 다시마 부회장이 36표로 최다 득표했고, 압둘라 회장은 25표를 받았다. 합종연횡을 거부한 정 회장은 13표에 그쳤다.

최고의 실력자는 AFC 회장이 아니었다. 알 사바 회장이 전면에 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그는 아시아 체육을 이끄는 수장이다. 축구로 눈을 돌렸다. IOC가 상위 개념의 조직이지만 실제로 규모는 FIFA가 더 크다. 알 사바 회장은 2년 임기 후 4년 임기의 집행위원에 재도전한다. 그리고 2019년 FIFA 회장까지 바라보고 있다.

그는 난공불락이었다. 알 사바 회장을 위한 '꼼수'로 선거판이 혼탁했다. 원래 FIFA 집행위원 3명은 동시 투표로 결정된다. 하지만 4년과 2년 임기로 분리해 투표를 진행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었다. 정 회장이 발언권을 요청하며 거부했지만 거대한 벽을 넘지 못했다. 30여개국이 분리 투표에 찬성했고, 알 사바 회장과 그의 '러닝메이트' 2명이 모두 FIFA 집행위원이 됐다. 알 사바 회장은 4년 전 정 명예회장의 낙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BBNews = News1
결과적으로 정 회장의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한국 축구 전반에 걸친 자성이 먼저 요구된다. '꼼수'와 타협해선 안되지만 그들의 편이 많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아시아 무대에서 '고자세 외교'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 회장이 취임한 후 많이 희석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위해 40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아시아의 시각이다.


국제 축구 무대에서 독자생존은 없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국 축구가 걸어온 찬란한 길이다. 대다수의 아시아 팬들은 한국 축구가 마냥 부럽다. 하지만 그라운드의 승패와 외교는 별개 문제다. 팬들의 눈높이에 기대서는 얻을 것이 없다. 접근 방향이 달라야 한다.

정 회장이 됐든, 앞으로 어느 누가 FIFA 집행위원에 도전하든 '대한민국'의 얼굴로 나서게 된다. 외교 무대에선 더 낮은 자세가 요구된다. '포용의 리더십'은 더 확대돼야 한다. 상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래야 '거대한 카르텔'도 깰 수 있다.

정 회장은 5일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해 "국내나 외국에서 원하는 등 여건이 된다면 재도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재도전에 의지가 있었다. 일단 길은 열렸다. 정 회장은 FIFA는 아니지만 이번 총회에서 AFC 집행위원으로 선임됐다. 무너진 외교력은 하루 아침에 복구할 수 없다.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해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들이 바뀔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줘야 한다. 몸을 낮추면 낮출수록 빛은 더 빨리 찾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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