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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였다.
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첫 실패를 경험했다. 1무2패, 조별리그 탈락이 그의 성적표였다. 두 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다.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0대1로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후 황보관 기술위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귀국 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의 면담 끝에 유임을 수용했다.
끝이 아니었다. 홀로 갈등을 계속했단다. 홍 감독은 "인천공항에 내리면서 사퇴라는 말을 하게 되면 비난을 피해갈수 있었지만 나는 비난까지 받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기간에 경기력, 기술적인 문제. 기능적인 문제 등 모든 것들은 제가 판단해 결정을 했다. 순간 순간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실패였다"며 "새로운 사람이 와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팀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의 사퇴로만 이어졌다면 나 역시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또한 지쳐있는 느낌이었다. 에너지 부분도 생각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사퇴를 결심한 건, 갖고 있는 모든 능력들이 아시안컵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9일에는 대표팀 회식 동영상이 유출됐다. 브라질을 떠나기 전날인 29일 베이스캠프인 이구아수 현지 음식점에서 회식을 가졌다. 국내의 격앙된 분위기와 달리 '음주가무'를 즐기는 장면이 여과없이 담겨있었다.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했다. 논란이 논란을 낳고, 결국 종착역까지 왔다.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며 끝내 알몸이 됐다.
홍 감독은 "내 명예는 축구에서 얻었다. 축구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다만 축구 인생에서 성실하게 임했고 최선을 다했다"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또 한 명의 지도자가 옷을 벗었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독이 든 성배'의 오명은 계속됐다.
A대표팀 감독직은 지도자라면 꿈꾸는 최고의 자리다. 하지만 환희보단 눈물이다. 또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러나 '독이 든 성배'는 한국 축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홍 감독님의 사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한국 축구사에서 슬픈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동료이자 후배로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독이 든 성배의 본질은 대표팀 감독이 나가는데 있어 주위의 영향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어떤 분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홍 감독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