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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이었다. 일찍 축구장을 찾았다. 직원들은 벌써 분주했다. 팬맞이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엄마, OO선수 오죠?", "선수들 오면 목소리 크게 응원해줘야돼", "사인 받아도 돼요?"…. 설렘이 느껴졌다. 모두들 사진기를 손에 들었다.
선수들이 도착했다. 감독이 가장 손을 흔들며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자 "와~"하는 환호가 터졌다. 박수도 나왔다.
"너무 하네. 아이들한테 눈 한번 마주쳐주면 안되나." 한 엄마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 팬들은 실망감이 커 보였다.
선수들은 왜 그랬을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기 전에는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은 선수도 있을 것이다. 가급적 팬들과의 접촉을 삼가고 싶어하는 선수가 있을 수도 있다. 아무와도 마주하지 않아야 경기가 잘 풀리는 '징크스'가 있는 선수도 있을 수 있다. 팀성적이 좋지 않으면 마음이 무거워서 그럴 수도 있겠다. 뭐,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마추어 선수라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프로라면, 안된다. '빵점'짜리 태도다.
프로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팬이 없는 프로는 존재할 수 없다. 어린 팬들은 누구보다 중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이런 팬들에게 실망감을 줬다. 잠깐,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행동에 어린 팬들은 상처를 받았다.
'운동장에서 잘하면 다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가. 오산이다. 큰 일날 생각이다. 혹시라도 그런 마음이라면 프로의 자격이 없다. 중징계 감이다. 팬들이 떠난 텅빈 운동장에서 몇 골 넣었다고 좋아할 건가.
생각을 바꾸어 보자. 출발은 '팬 덕분에 내가 뛸 수 있다'는 마음이다. 프로의 기본 자세다. 경기 전에 팬과 접촉하면 플레이가 잘 안된다고? 그런 징크스가 있다면 버리자.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반대로 '한명의 팬이라도 더 만나면 잘 풀린다'를 징크스로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모든 프로선수들이 가져야 할 징크스다. 아니 당연한, 지극히 당연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프로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구단마다 많은 팬서비스를 준비한다. 선수들도 많은 팬들과 만나고 있다. 재능 기부, 봉사활동…, 바쁘게들 움직인다. 팬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들이 보인다. 하지만 아주 조그마한 부분,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곳에서 소홀한 것 같다. 모 구단 직원은 "선수들에게 교육을 많이 시키는데 쑥쓰러워하는지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팬과 만나는 게 뭐가 쑥쓰러울까.
언제인가 팀승리에 공헌한 김신욱(울산)이 경기 후 인터뷰를 가졌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구단버스는 이미 떠났다. 마음이 급할 법했다. 하지만 선수통로로 슬쩍 빠져나가지 않았다. "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사인해주고 가야죠"라고 했다. "와, 팬서비스 끝내준다." 팬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프로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나와있다. '언제라도 팬들과 함께하면 잘 풀린다.' 이런 징크스가 정말 필요할 때다.
신보순 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