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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스토리]이천수 "이제는 희망의 메시지 전하고 싶다"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3-04-18 10:41 | 최종수정 2013-04-19 08:47



"처음 데뷔할 때의 설렘이었다." K-리그 클래식 복귀 이후 첫 선발 출전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얼음 찜질하면서 집에 갔더니 와이프가 축구 더 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더라." 첫 선발 출전의 후유증은 컸지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인천맨' 이천수(32·인천)가 16일 전남전에서 K-리그 무대에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격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대전전에서 교체출전으로 2009년 6월 20일 전북전 이후 1381일 만에 감격스러운 복귀전을 치렀다. 이후 포항전에서 25분을 소화한 뒤 세 경기만에 풀타임을 소화했다. "'쥐'가 났지만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소감을 밝힌지 하루가 지난 17일, 인천의 훈련장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약 1년 6개월만의 풀타임 출전으로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숨통이 트였고 말문도 트였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나보다. 임의탈퇴의 철퇴를 내린 전남을 상대로 선발 출전 경기를 치른 뒷 얘기부터 가족의 힘으로 그라운드에 돌아오기까지의 과정, '이천수가 달라졌다'는 평가에 대한 솔직한 속내, 남은 축구 인생에 대한 희망까지 소상히 털어 놓았다. 복귀골 세리머니도 살짝 공개했다. 세리머니 속에는 이천수의 인생과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길 예정이다.


숨통이 트였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기뻤다." 이천수가 김봉길 인천 감독으로부터 전남전 선발 출전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경기 하루 전날이었다. 김 감독은 몸상태와 부상에 대한 우려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천수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천수는 "처음부터 팀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선발 출전이 결정되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공식 인터뷰에서는 "그냥 K-리그 경기 중 한 경기 일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상대는 전남이었다. 2009년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으로 무단 이탈했던 '친정팀'이다. 이천수는 "사실 경기에 들어가기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경기가 과열되지 않을까, 서포터즈간에 충돌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 이천수는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전남 서포터즈석 앞에서 인사를 했다. 경기 중 야유를 보냈던 전남 서포터즈도 '축구 선수'로 돌아온 이천수를 박수로 맞이했다. 이천수는 "광양에서 서포터즈에게 사과를 하러 갔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선수로서 당당히 인사를 드리니 마음이 편안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숨통이 트였다.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도 조금이나마 내려 놓게 된 듯 했다. 그라운드 안에서도 시원했다. 그는 "이번 경기로 호흡이 트였다. 다음 경기부터는 점점 편해질 것이다. 내가 풀타임을 소화할 체력이 된다면 감독님의 선수 운영 로테이션에서 한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해서 인천 공격진의 한 옵션이 되겠다"고 했다.

가족으로부터 안정을 찾다.

1년간 야인 생활을 하던 이천수는 어느날 조카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친구들이 이천수가 누구인지 모른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삼촌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조카다. 삼촌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자존심이 강한 이천수에게 큰 충격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때부터 이천수는 복귀를 결심하고 전남의 광양축구전용구장을 찾았다. 박항서 감독, 김봉수 코치, 하석주 감독을 잇따라 찾아가 사과의 뜻을 전했고 전남 서포터즈에게도 머리를 숙였다. 자숙의 의미로 광양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한 달 넘게 봉사활동을 했다. 결국 전남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임의탈퇴를 철회했다.

인천으로 이적한 뒤에도 가족은 그를 뛰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는 "가족의 응원이 나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지난 3월, 2세 연하의 아내와 혼인신고를 마친 이천수는 7월에 아빠가 된다. 12월에는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다. 이천수는 "아내가 있어서 희망을 더 가질 수 있다. 또 튼튼이(태명)가 있어서 나는 더 열심히 뛰어야한다. 이제는 운동이 끝나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축하도 위로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다음 경기를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고 행복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천수의 선발 복귀전에도 가족이 함께 했다. 부모님과 조카, 친척동생 등 20명이 운동장을 찾아 그에게 힘을 불어 넣어줬다.


가족 얘기를 하던 중, 이천수가 갑자기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아내는 몸이 무거워서 집에서 TV로 경기를 봤다. 내가 얼음찜질을 하며 집에 가니 아내가 걱정을 많이 하더라. 계속 축구 할 수 있냐고 걱정하더라. 이겨낼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축구 선수' 이천수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이천수는 "내가 방황하던 시기에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그동안 나에게 힘을 주고 배려만 해줬던 여자다. 그동안 아내가 웃은 적이 별로 없다.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시간만 주고 싶다. 좋은 축구선수,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당당하게 일어서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천수가 달라졌다?

그라운드 안에서의 투지는 예전과 다를 바 없다. 반면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모습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직까지(?) 별 탈은 없다. '이천수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석주 전남 감독은 "천수가 달라진 것 같아서 흐뭇하다"고 했다. 이천수에게 "실제로 달라졌나, 달라진 척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천수는 그라운드 안과 밖을 나눠 설명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상대 선수들을 존중하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예전에는 지고 있는 상황에서 흥분을 많이 했고, 거친 플레이가 나오거나 심판 판정에 불만을 많이 드러냈다. 이제는 둥글둥글하게 살고 싶다. 휘슬을 불면 '아쉬워요'라는 말만한다. 전보다 좋아진 건 맞는 것 같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경기 외적으로 성숙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인천에 입단하면서 아내와 약속을 했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인사하고, 시간 약속에 늦지 않기로 했다. 그 부분들을 지키다보니 보시는 분들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내 꿈은 후배들에게 존경 받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하는 꿈나무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는게 너무 힘들었다. 꾸준히 기억되는 선수로 남기 위해서 달라져야 한다."

희망을 전하는 세리머니

"아직 50점이다. 세밀함이 부족하다. 하지만 50점에서 바로 90점, 100점으로 올라가고 싶다. 아직 먹이를 잡아먹을 준비가 100%되지 않았다. 100%가 된다면 맹수처럼 먹이를 잡으러 무섭게 달려들 생각이다." 이제 3경기를 치렀다. 예정보다 빠른 복귀였다. 반면 경기력은 본인이 봐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100점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계기가 필요하다. 복귀골이다. 그는 "내 경기력을 끌어 올리고 기분을 향상 시키는데는 골이 최고다. 첫 포인트가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 내 1년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 골이 들어가야 더 큰 꿈을 위해 전진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골보다는 골 세리머니에 대한 갈증이 크다. 자신의 인생을 직접 몸으로 표현을 하고 싶단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메시지를 얻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다시 그라운드로 못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지만 있다면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내가 첫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면 '이런 생각으로 했구나'하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민은 있다.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여러가지 세리머니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 의미를 몸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골이 아직 안 터지나?(웃음)"


인천=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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