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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고 돈다. 선수로 맞대결을 펼쳤던 이들이 세월이 흘러 지도자로 만난다. 축구계의 이치다.
대표적인 경기가 '도쿄대첩'이다. 199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에서도 둘은 만났다. 0-1로 뒤지던 후반 38분 서 감독은 최용수(현 FC서울 감독)의 헤딩패스를 헤딩골로 연결했다. 환호하는 서정원 바로 뒤에 이하라 코치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한국은 2대1로 역전승했다.
이후 둘의 행보는 달랐다. 1999년 A대표팀을 은퇴한 이하라 코치는 주빌로 이와타(2000년)와 우라와 레즈(2001~2002년)에서 뛴 뒤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TV해설가 등으로 활약한 뒤 2006년 일본 올림픽대표팀 수석 코치로 부임해 2008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다. 2009년부터는 가시와 레이솔 코치를 맡았다. 가시와의 수비라인을 직접 가다듬고 있다.
지도자로서 둘의 첫 맞대결은 3일이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CL H조 3차전이었다. 서정원 감독은 '공격앞으로'를 외쳤다. 수원은 공세의 고삐를 강하게 당겼다. 정대세와 라돈치치 서정진 등을 앞세웠다. 점유율을 높이면서 가시와를 공략했다. 하지만 이하라 코치가 구축한 가시와의 수비는 단단했다. 최후방과 허리의 밸런스를 확실하게 잡았다. 수비수와 미드필더간의 공간은 일종의 견고한 함정이었다. 수원 선수들은 가시와의 함정에 갇힌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볼만 돌렸다. 수원은 페널티킥을 4개나 얻었지만 단 1개밖에 성공시키지 못했다. 2대6으로 대패했다.
이번 맞대결에서 더욱 절박한 쪽은 서 감독이다. 수원은 현재 2무1패로 H조 3위에 머물러 있다. 16강행 티켓은 조2위까지만 준다. 이번 가시와 원정경기에서는 승점을 얻어서 돌아가야 한다. 승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최소한 무승부는 거두고 간다는 것이 서 감독의 각오다. 2대6 대패에 실망했던 선수들도 잘 추스렸다. 6일 대구와의 K-리그 클래식 5라운드에서 3대1로 승리했다. 스트라이커 정대세가 한국 무대 데뷔골을 터뜨렸다. 스테보도 골을 넣으며 부활을 알렸다. 선수들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하라 코치는 느긋하다. 가시와는 3연승을 달리며 H조 선두로 나섰다. 16강행의 8부 능선을 넘었다. 이번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16강행을 확정할 수 있다. 지더라도 큰 타격은 아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