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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서 돌아온' 이동현-김진현 "우린 잃을게 없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2-06 16:17 | 최종수정 2013-02-07 08:29


이동현(왼쪽)과 김진현. 구마모토(일본)=박찬준 기자

"밑바닥을 찍었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어요. 우린 잃을게 없거든요."

이구동성이었다. '눈물 젖은 빵'은 그야말로 이들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많은 기대 속에 프로로 데뷔한 이들은 한순간 추락하며 내셔널리그로 떨어졌다. 동기들이 K-리그(현 K-리그 클래식)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때마침 김인완 대전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어렵게 돌아온 이들에게는 말그대로 '악과 깡'만 남았다. 부활을 꿈꾸는 이동현(25)과 김진현(27)을 만났다.


이동현. 구마모토(일본)=박찬준 기자
이동현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만둔다!"

이동현은 김인완 감독의 '비밀병기'다. 김 감독은 칭찬에 인색하다. 선수들 평가에 있어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동현 얘기가 나오자 엄지를 치켜올린다. 김 감독은 "노상래 현역때와 비슷한 포스가 느껴진다. 슈팅도 좋고 스크린플레이도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동현은 기대주였다. 경희대 재학 시절 득점왕에도 오르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었다. 2010년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4순위로 강원의 유니폼을 입었다. 김영후의 파트너 후보로도 지목됐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5경기 출전에 그쳤다. 가장 큰 문제는 마인드였다. 이동현은 "자신감이 너무 없었다. 이을용 김영후 같은 선수와 함께 운동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욕심이 없으니 위기가 올때 넘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으로 이적했다. 다행히 내셔널리그는 그에게 반전의 무대가 됐다. 2012년에는 11골-8도움을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했다. 내셔널리그에 있으면서 프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 무엇보다 강단이 생겼다. 이동현은 "대학동기 중에서 오재석(감바오사카)과 함께 가장 먼저 프로로 왔다. 그때 친구들이 나를 보러 K-리그에 왔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반대가 되더라. 그때 다짐한게 많았다"고 했다. 이어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선수를 그만둔다는 각오로 왔다. 감독님의 기대가 큰만큼 공격포인트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김진현. 구마모토(일본)=박찬준 기자
김진현 "목표? '왼쪽 윙백하면 나'!"

김진현은 괴짜였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장난끼 넘치는 모습 속에서도 눈빛은 살아있었다. 살아남겠다는 각오였다.


당시 3관왕을 차지한 고교 최강 광양제철고 출신의 김진현은 2007년 전남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했다. 전남에서 3년간 그저그런 선수였던 김진현은 2010년 경남으로 이적하며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대전이었다. 2011년 5월 대전과의 컵대회서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부상 후 광양제철고에서 인연을 맺은 김인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부산 이적을 추진했지만 에이전트와 틀어지며 일이 꼬였다. 재활센터에서 개인 훈련을 하던 김진현은 결국 내셔널리그 행을 택했다. 김진현은 "쉬는 동안이 축구생활하면서 가장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기다"고 했다. 다행히 한수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다시 한번 김 감독의 부름을 받게 됐다.

밑바닥을 경험해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김진현은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불만도 안생기고, 코칭스태프들이 하는 말도 쏙쏙 들어온다"며 웃었다. 연습경기를 치르며 자신감도 늘어나고 있다. 워낙 각오를 세게 다져서인지 다른 선수들이 모두 혀를 내두르는 김 감독표 지옥훈련도 "생갭다 강도가 약하다"고 한다.

그에게 목표를 물었더니 '주전으로 뛰고 싶다'는 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왼쪽 윙백하면 내이름이 나올 정도로 하겠다. 이를 위해 죽기살기로 뛸 것이다." 경기장 안팎에서 그의 이름이 자주 들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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