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강원FC, 그들이 살아남기까지의 여정

임기태 기자

기사입력 2012-12-11 12:29


1부리그 잔류를 확정지은 강원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강등 (降等) [강ː등] [명사] 등급이나 계급 따위가 낮아짐. 또는 등급이나 계급 따위를 낮춤.

'30년 역사' K리그에 있어 2012년은 변화의 기로에 선, 더없이 중대한 해였다. 지난 5년간 고수해왔던 6강 PO의 옷을 벗어던진 것 정도가 아니었다. 스플릿 시스템과 함께 도입되며 K리그의 오랜 숙원을 풀어낸 '강등제'는 무엇을 상상했던 그 이상을 보여주리라는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2부 리그'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승점 차가 적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중하-최하위권 팀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피를 튀기며 싸워야 했다. ?

그 중 지난해 최하위였던 '강원'과 창단 2년 차 K리그의 막내였던 '광주'가 벌인 싸움이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먼저 생존을 결정지은 12위 전남, 최악의 가정 하에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던 13위 대전, 그리고 승점 차가 고작 1점밖에 되지 않았던 14위 강원과 15위 광주.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싸움 속 1부 리그 잔류의 마지막 빈자리는 지난달 28일에 열린 43라운드가 되어서야 강원의 몫으로 결정됐다. ?

1부 리그 잔류를 확정지은 뒤, 홈에서 인천을 상대로 시즌 최종전 승리를 챙긴 강원 구단은 전광판에 영상을 하나 띄었다. 여러 문장이 스크린을 스쳐가는 동안 가슴 한 구석을 잡은 문장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모두가 우리를 강등 후보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 하나엔 '즐기는 축구'보다도 '살아남기 위한 축구'를 해야 했던 강원의 처절한 싸움이 모두 담겨있었다. 그런 그들이 강등제에서 살아남기까지의 여정은 어떠했을까. '2012시즌 Best 7'이라는 부제로 재조명해보고 싶다.

1. 3월 11일 대구전 2-0 승.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한 법. 그런 차원에서 홈 개막전이었던 대구전은 무척이나 값진 경기였다. 지난해 최하위였던 강원이 첫 승을 신고했던 때는 무려 6월 중순이었으니, 이 팀엔 알게 모르게 '첫 승'에 대한 부담감과 트라우마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 경기에서 골대를 세 번이나 때리며 '고사'까지 지냈던 지난날을 떠올렸을 때, 시원하게 골망을 흔들었던 주장 김은중의 두 골에 강원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솔직히 부담을 많이 느꼈다. 밖에 커피 마시러 갔을 때에도 팬분들께서 나만 보면 무조건 골 넣어야 한다고 하시더라."며 말문을 열었던 김은중에겐 예상대로 "제주를 떠나 지난해 최하위 강원을 다음 행선지로 택한 것이 의외였다."는 질문이 날아갔다. 이에 대해 내놓은 대답 "강원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게 오히려 내겐 메리트였다. 외부의 말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가는 희열을 강원에서 느끼고자 한다"는 것. 15개 팀 중 14위였던 제주를 이듬해 준우승까지 끌어올리며 기적을 쓴 김은중다웠다.

2. 5월 26일 울산전 1-2 승.


환골탈태를 외치던 강원은 인천전, 경남전 승리로 4월 중순엔 중위권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모두가 강원의 기세에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스포츠계 희대의 명언에서 강원도 자유로울 수 없는 듯했다. 폭우 속에 열린 부산 원정 경기 패배 후 강원은 서울전, 상주전, 제주전, 포항전까지 내리 5연패를 당했고, 축 처진 분위기 속에 떠난 전반기 마지막 경기 울산 원정에 사람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창단 원년 울산 호랑이굴에서 3-4 짜릿한 승리를 거둬본 경험이 큰 힘이 됐던 걸까. 강원은 김은중과 정성민의 연속골로 당시 5위였던 울산에 승점 3점을 얻어냈다. A매치 휴식기 동안 연맹에서 주최한 사랑의 집짓기 봉사를 다녀온 김상호 전 강원 감독에게 김호곤 감독의 반응이 어떠했느냐고 묻자, "충격이 좀 크셨던 모양이다. 그에 관해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강원의 후반기가 궁금했다.

3. 6월 30일 성남전 1-2 승.

하지만 6월 휴식기 이후, 강원은 기대와 달리 또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비교적 약팀으로 분류되며 그룹A 진입에 분수령이 되리라 내다봤던 대전과 상주에 연달아 덜미를 잡히며 받아든 성적표는 4연패. 슈퍼매치 패배 후 분노한 일부 팬들에 의해 선수단 버스가 가로막혔던 장면은 일주일 뒤 강원의 홈 구장 춘천 송암 스포츠타운에서도 똑같이 연출됐다. 결국 6월 마지막 날에 열린 성남 원정에는 정신력을 일깨우기 위한 '극약처방'이 따랐다. 보통 1박을 포함해 치르는 원정 경기를 당일에 다녀오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시작은 좋았다. 김은중이 전반 9분 만에 첫 골을 성공시켜 분위기를 잡아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체력 저하는 전반 중반부터 눈에 확연히 띄었고, 결국 동점골까지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끝까지 승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강원은 근육 경련에 쓰러지는 선수가 속출하는 가운데 후반 막판 터진 웨슬리의 결승골로 눈물 나도록 감격스러운 승리를 일궈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시즌 최순호 감독에게서 지휘봉을 이어받은 김상호 감독은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강원을 떠나고 말았다.

4. 9월 27일 광주전 1-0 승.

지난 7월, 김학범 감독의 데뷔전부터 승리를 거머쥔 강원은 포항 원정에서도 승리하며 어느 정도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는 듯했다. 하지만 강원은 또다시 연패의 수렁에 빠졌고, 스플릿 들어 두 경기를 내리 패하며 강등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서포터즈 나르샤가 광주전 하루 전 날 강원의 클럽 하우스를 찾아가 "강등 당해도 좋으니 기죽지만 말라."며 촛불 응원을 펼친 것이 반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비장한 각오로 광주전에 나선 강원은 김은중이 터뜨린 PK골로 9경기 만에 승리를 챙겼고, "경기장 찾아주시는 홈 팬들께 첫 승을 안겨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다"던 김학범 감독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 수 있었다. 돌아보면 마지막까지 강등 경쟁을 해왔던 광주와의 비교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경기에서 승리한 전리품으로 얻은 승점 3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로써 날개를 단 강원은 대반격에 더욱 정진할 수 있었다.

5. 10월 21일 대구전 3-0 승.

광주전 승리와 전남전 무승부로 패배를 잊어가던 강원의 기세는 대전 원정에서 주춤했다. 지쿠가 3골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오랜 골 가뭄에 단비를 내렸으나, 두 경기 연속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던 수비진이 문제였다. 한 경기에서 무려 5골을 내주며 올시즌 최다 실점을 내줌과 동시에 김빠진 패배를 당한 것. 강등권 탈출이라는 소박한 소망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경기는 8경기, 슬쩍 조금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홈에서 치른 대구전 분위기가 무거웠음은 당연했다. 3월에 열린 홈 개막전에서 승리한 경험은 있으나, 이후 그룹 A 진출까지 노렸던 대구의 기세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4점 차인 광주와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면 강등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것이 뻔했다. 절실함이 강했던 경기, 객관적인 순위가 높았던 대구의 전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발과 머리로 만들어낸 지쿠의 연속골과 쐐기를 박은 오재석의 골에 힘입은 강원은 속 시원한 3점 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6. 11월 4일 대전전 5-1 승.

"너희들 저번에 5골 먹었지? 이번엔 꼭 5골 넣어서 그대로 갚아줘라." 대전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남긴 김학범 감독의 말은 그라운드에서 현실이 되었다. 상주전 몰수승으로 한 라운드를 쉬어간 강원은 2주 동안 충전한 화력을 5골 폭발로 이어나갔다. 지쿠, 심영성, 백종환, 웨슬리, 김은중이 골고루 1골씩을 터뜨린 것도 고무적이었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기대어가던 강원의 국내 공격수들까지 살아난 의미 있는 승리였다.

대전 원정에서 당했던 것을 똑같이 돌려준 강원은 79일 만에 자력으로 최하위를 탈출했다. 광주를 누르고 끝내 살아남은 강원에 처음으로 강등권 탈출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그런데 사실 강원의 대승은 큰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서울과 수원의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가 같은 날에 열려 미디어의 관심이 온통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쏠린 것. 하지만 '관심'보다 '생존'을 고민해야 했던 강원은 아쉬움을 표현할 정도의 여유도 없었다. 다음 주엔 또 한 번의 높은 산, 광주 원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7. 11월 28일 성남전 1-2 승.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가 떠오른다. 성남은 창단 후 3년 동안 도전해오는 강원에 단 한 골밖에 내주지 않았고, 내리 3연패를 안기며 '모욕감'을 톡톡히 줬다. 하지만 올해 강원은 그동안의 서러움을 확실히 뒤집었다. 6월 말에 이어 11월 말에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는 단순한 2연승이 아니었다. 두 번 모두 승리의 눈물을 흘리는 감격이 함께 했으니, 성남은 승점 6점 그 이상을 강원에 선물했다.?

승점 1점 차 불안한 14위를 지켜나가던 강원에 희소식이 전해진다. 30분 앞서 열린 경기에서 광주가 대구에 2대 0으로 패한 것. 이로써 드디어 자력으로 1부 리그에 잔류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백종환의 골에 힘입어 앞서 나가던 강원은 한 점 차 리드를 끝내 굳혀내 힘겨운 강등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말 힘들었다."던 김학범 감독부터 "살아남을 줄 알았다"던 주장 김은중과 "살았다. 정말 행복하다"를 연호하던 오재석까지, 강원은 2013년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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