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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축구는 갓 스무살이 된 소녀다. 선배들이 눈물로 쌓은 토대를 발판으로 걸음마를 떼었다. 북한과 일본, 중국의 틈바구니에 밀렸다. 대한체육회의 한 해 예산과 맞먹는 1000억원을 주무르는 대한축구협회 산하 팀이지만, 남자 선수들에 항상 밀렸다. 때문에 서러움도 여러 번 겪었다. 이런 아픔을 딛고 세계 무대에 서서히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2010년 독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3위, 트리니다드토바고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 등 꿈같은 기억을 안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여자 축구는 배울 것도 많고 경험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은 순박한 소녀와 같다.
일본은 강했다. 개인기와 패스로 한국을 공략했다. 전반전에만 세 골을 몰아 넣으며 경기장을 찾은 2만4097명의 관중을 열광시켰다. 도쿄국립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일방적인 야유 속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투혼을 발휘했다. 90분 내내 일본의 파상공세에 맞섰던 수비수 신담영(19·울산과학대)은 경련이 일어난 다리를 부여잡으면서 끝까지 경기를 마쳤다. 주장 완장을 차고 중원에서 선수들을 이끈 이영주(20·한양여대)는 "끝까지 포기하지마"라고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일본 관중들의 함성에 묻혀 제대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와중에도 외침은 쉴새 없이 이어졌다. 동점골의 주인공 전은하(19·강원도립대)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동료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선제골을 내준 뒤 동점골을 터뜨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던 환희가 너무도 아쉬웠다. 2만명이 넘는 일본 관중들을 상대로 "대~한민국"을 외쳤던 50명 남짓의 붉은악마도 결국 고개를 숙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패였다. 개인기량은 차이가 났고 실수도 많았다. 그러나 성장통일 뿐이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 이번 대회에서 나이지리아와 이탈리아, 브라질 등 강팀들을 상대로 좋은 성과를 올렸다. 요시다 히로시 일본 감독은 "오늘 경기는 한국과 일본 여자 축구 간의 격차가 없다고 봤다. 한국이 개인기만 갖춘다면 일본보다 더 나은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소녀들의 투혼은 적장의 박수를 받을 만큼 훌륭했다. 성장통을 안고 돌아오는 그들에게 질책보다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도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