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전이었다. 서로 지지않으려 했다. 아니 질 수 없었다. 그라운드내에서는 전쟁, 밖에서도 전쟁이었다. 동메달 결정전에 앞서 한-일전이었다.
구자철의 두번째 골이 터져나왔다. 밀레니엄 스타디움은 온통 태극기 천지였다. 2대0의 승리. 관중석 곳곳에서 그라운드로 태극기를 내려보냈다. 선수들은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팬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기쁨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경기 후 라커룸은 광란의 파티장이었다. 선수들은 음악을 크게 틀었다. '오! 필승코리아!'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물과 스포츠음료를 서로에게 뿌렸다. 코칭스태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태영 코치를 습격했다. 물과 스포츠음료가 함께 담긴 아이스박스를 쏟아부었다. 얼음과 함께였다. 김 코치는 고개를 돌리다가 얼음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이마가 퉁퉁 부어올랐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와중에 홍 감독은 기자회견에 나섰다. 옷에는 물과 스포츠음료 얼룩이 덕지덕지 남아있었다. 홍 감독은 "라커룸은 미친 놈들 같다"고 말했다.
축하 파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였다. 호텔 로비에서는 홍 감독과 박주영이 마주 앉았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긋이 바라봤다. 홍 감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홍 감독은 "네가 골을 넣어준 덕택에 내가 군대를 안 가게 됐다. 고맙다"고 했다. 홍 감독은 6월 가졌던 박주영 병역 관련 기자회견에서였다. 홍 감독은 박주영의 군입대를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박주영이 군대 안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박주영 때문에 겪었던 마음 고생이 묻어있었다. 박주영은 싱긋 웃었다. 그러더니 "그럼 4주 기초군사훈련이라도 대신 가주세요"라고 했다. 서로 크게 웃었다. 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사나이들이 화끈한 마무리였다.
카디프(영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