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2일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서 유럽의 강호 스페인을 맞았다. 120분간의 혈투 끝에 득점없이 경기를 마쳤다. 양 팀은 '러시안 룰렛'이라 불리는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선축한 한국은 황선홍-박지성-설기현-안정환이 차례로 골을 성공시켰다. 마찬가지로 3번째 키커까지 모두 성공시켰던 스페인은 네번째 키커로 호아킨을 내세웠다. 숨막히는 순간 이운재가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냈다. 한국은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가 골을 성공시키며 사상 첫 월드컵 4강 고지에 올랐다. 골을 성공시킨 후 언제나 무뚝뚝하던 홍명보의 환한 웃음은 여전히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다섯번째 키커 맞대결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영국의 다섯 번째 키커 다니엘 스터리지(첼시)가 킥을 위해 달려오던 중 주춤했다. 호아킨의 모습과 같았다. 그의 슛은 이범영의 손에 걸렸다. 마지막 키커로 나선 기성용(셀틱)이 시원하게 골망을 가르며 한국 축구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4강행에 성공했다.
스페인전의 재연이었다. 스페인전서 마지막 킥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던 홍명보는 10년 뒤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제자의 승리에 환호했다. 물론 기쁨의 크기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