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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고충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팀과 리그에 빨리 적응해 연착륙해야 한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서두르다 보면 부상을 하거나 슬럼프에 빠지기 십상이다. 음식과 문화에도 적응해야한다. 기혼자라면 의지할 가족이라도 있지만 미혼자라면? 특히 '외로움'과의 싸움이 가장 치열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집-훈련장-집을 반복하는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기성용(23·셀틱)은 행운아다. 2010년 7월 셀틱에 합류한 차두리(32·뒤셀도르프)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성격이 밝고 후배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차두리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차두리가 2002년 프로에 데뷔했던 독일무대로 떠나면서 기성용은 다시 혼자가 됐다. 반면 지독하게 '외로움'을 탔던 구자철(23·아우크스부르크)은 반색하고 있다. 벌써부터 차두리와 함께 할 독일 생활에 잔뜩 기대를 품고 있다. '구-차 듀오'를 꿈꾸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하는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는 것이 해외파를 지켜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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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듀오' 기성용과 차두리가 이별을 맞이했다. 2년간의 동고동락이 끝났다. 특히 기성용은 형제처럼 지냈던 차두리의 공백을 벌써 느끼고 있는 듯 하다. 기성용은 차두리의 뒤셀도르프 이적이 발표난 뒤 이틀 뒤인 지난 10일, 트위터를 통해 "두리형, 2년 동안 형때문에 즐겁고 행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항상 다치치 말고 화이팅합시다"라며 이별 인사를 전했다. 이어 "형, 나 놔두고 가기 있기 없기? 기-차가 드디어 탈선해버렸음. 우리 20101226일 생각하며. 사랑해 두리형"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성용이 언급한 2010년 12월 26일은 기-차 듀오가 한 경기에서 골맛을 본 유일한 날이다. 세인트존스턴과의 리그 경기에서 0-0으로 맞서던 후반 46분 차두리가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2분 뒤 기성용이 같은 왼발로 득점에 성공하며 셀틱의 2대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장에서 함께 기쁨을 나눴다면 그라운드 밖에서는 진한 우정을 나눴다. '차두리가 기성용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차두리 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쉬는 날이면 함께 축구 오락을 즐겨했다. 부상을 했을 때에도 선배 차두리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재활 치료를 병행했다. 믿고 의지하는 형제나 다름 없었다. 기성용의 부친 기영옥 광주시축구협회장도 "성용이가 스코틀랜드에 혼자 있을때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두리가 있어서 든든하다. 두리에게 고맙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기-차'는 탈선했다. 먼저 떠난 '형'도 아쉬움이 가득하다. 차두리는 지난 19일 독일로 출국하면서 "성용이와 정말 정이 많이 들어 식구같다. 떨어지게 됐지만 내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경기력도 더 좋아졌고 한 단계 도약할 준비가 끝난 것 같다. 원하는 팀에서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며 마지막까지 동생을 챙겼다. '동생'도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이머리그(EPL) QPR, 리버풀, 러시아 루빈 카잔이 기성용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기-차가 다시 조우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과 브레멘에서도 기성용의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독일 무대에서 '기-차 듀오 시즌 2'가 막을 열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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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운명이다. 한 사람에게는 아픈 이별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반가운 만남이 됐다. 차두리의 독일행을 누구보다 반기는 이는 기성용의 동갑내기 '절친' 구자철이다. 구자철은 24일 서울 중구 아디다스 메가샵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정말 기쁘다. 두리형이 (독일에) 복귀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기-차 듀오'가 부럽긴 부러웠나보다. '구-차 듀오'를 예고했다. "독일 집에 김치냉장고가 없다. 김치 얻으러 가도 되는지 묻고 싶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뒤셀도르프간 거리가 상당해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거리의 장벽쯤은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구자철은 "기차를 타고 4시간 반 정도 걸리고 차를 타면 더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동시간 관계없이 독일에서 만나면 기쁠 것 같다. 자주자주 봤으면 좋겠다"며 차두리에게 애뜻한 러브콜을 보냈다.
비록 한솥밥을 먹는 동료는 아니지만 '기-차 듀오'만큼 '구-차 듀오'도 돈독한 우정을 쌓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팀에서 함께한 추억이 많다. 또 같은 스포츠용품업체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생활에 익숙한 차두리가 아직 독일 생활 1년차에 불과한 구자철을 적극 도울 것이다. 믿고 의지할 존재가 생긴 구자철도, 또 다른 동생을 얻게된 차두리에게도 서로 이로운 만남이다. '구-차 듀오'의 탄생이 머지 않아 보인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