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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수 35-9, 볼 점유율 64%-39%.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대리석 광산 지역인 카라라에서 태어난 부폰은 운동선수 집안에서 자랐다. 부친 아드리아노는 역도 선수, 모친 마리아 스텔라는 원반던지기 선수, 두 누나인 베로니카와 젠달리나는 배구 선수였다. 삼촌 안젤로 마소코는 농구 선수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사촌인 로렌초 부폰은 이미 '골키퍼의 전설'로 불렸다. 부폰은 1m91의 큰 키에 민첩성, 빠른 예측력, 동물적 판단력 등 골키퍼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갖췄다. 파르마 유스팀 출신인 그는 1995년 정식으로 파르마 1군과 계약했다. 1996~1997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한 그는 1998~1999시즌 유로파리그의 전신인 유럽축구연맹(UEFA) 컵을 우승했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1년 유벤투스로 둥지를 옮길 때 기록을 세웠다. 이적료 3260만파운드(약 589억원)의 이탈리아 골키퍼의 최고 대우를 받았다. 부폰은 '먹튀'가 아니었다. 2001~2002과 2002~2003시즌, 팀의 연속 우승에 일조했다. 2006년은 환희와 아픔의 시간이었다. 독일월드컵에서 우승했고,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돼 '야신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팀이 승부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높은 연봉을 감당할 수 없던 유벤투스는 주축 선수들을 이적시켜야 했다. 그 중 부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폰은 유벤투스를 떠나지 않았다. '의리'를 지켰다. 2007~2008시즌 곧바로 세리에A로 올라온 부폰은 결국 2011~2012시즌 무패(23승15무) 우승 신화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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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가 이 부폰에게 제대로 당했다. 또 다시 '승부차기 징크스'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잉글랜드는 역대 메이저대회 승부차기에서 1승6패를 기록하게 됐다.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악몽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부터 시작된다. 잉글랜드는 준결승에서 독일(당시 서독)을 만나 1대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졌다. 스튜어트 피어스와 크리스 워들이 마지막 2차례 기회를 모두 날렸다. 독일과의 악연은 계속됐다. 자국에서 열린 유로1996 준결승에서 1대1로 비겨 승부차기에 돌입, 6번째 키커였던 사우스게이트가 실축해 다시 한 번 5-6으로 무릎을 꿇었다. 앞서 8강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4-2로 웃은 것이 유일한 승리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16강전에서도 승부차기의 망령에 사로잡혔다.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끝에 3-4로 졌고, 유로2004에서는 개최국 포르투갈을 만나 5-6으로 져 8강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8강에서도 포르투갈과 승부차기까지 벌였으나 또 1-3으로 패했다. 그리고 6년 만에 징크스 탈출을 외쳤지만 극복하지 못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