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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의리의 사나이' 부폰과 英의 지긋지긋한 'PK 징크스'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2-06-25 12:12


이탈리아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왼쪽에서 두 번째)와 마리오 발로텔리가 승부차기 끝에 잉글랜드를 꺾자 껴안으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키예프(우크라이나)=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슈팅수 35-9, 볼 점유율 64%-39%.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를 압도했다. 이탈리아를 수식하던 '빗장수비'는 옛말이었다. 안드레아 피를로(유벤투스)를 축으로 펼친 아기자기한 패싱력은 이탈리아의 일방적인 경기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답답했다. 정규시간 90분과 연장 전후반 30분 등 총 120분 동안 골은 터지지 않았다. 골대를 두 차례 강타했다. 연장 후반 9분에는 안토니오 노체리노(AC밀란)가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잉글랜드의 질식수비는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25일(한국시각)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유로2012 8강 승부는 결국 '11m의 러시안 룰렛'이라 불리는 승부차기에 갈렸다.

단연 돋보인 존재는 이탈리아의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34·유벤투스)이었다. 3-2로 앞선 상황에서 네 번째 키커 애슐리 영(첼시)의 슈팅을 선방했다. 이어 이탈리아는 다섯 번째 키커 알레산드로 디아만티(볼로냐)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켜 4-2로 대회 4강에 합류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대리석 광산 지역인 카라라에서 태어난 부폰은 운동선수 집안에서 자랐다. 부친 아드리아노는 역도 선수, 모친 마리아 스텔라는 원반던지기 선수, 두 누나인 베로니카와 젠달리나는 배구 선수였다. 삼촌 안젤로 마소코는 농구 선수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사촌인 로렌초 부폰은 이미 '골키퍼의 전설'로 불렸다. 부폰은 1m91의 큰 키에 민첩성, 빠른 예측력, 동물적 판단력 등 골키퍼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갖췄다. 파르마 유스팀 출신인 그는 1995년 정식으로 파르마 1군과 계약했다. 1996~1997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한 그는 1998~1999시즌 유로파리그의 전신인 유럽축구연맹(UEFA) 컵을 우승했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1년 유벤투스로 둥지를 옮길 때 기록을 세웠다. 이적료 3260만파운드(약 589억원)의 이탈리아 골키퍼의 최고 대우를 받았다. 부폰은 '먹튀'가 아니었다. 2001~2002과 2002~2003시즌, 팀의 연속 우승에 일조했다. 2006년은 환희와 아픔의 시간이었다. 독일월드컵에서 우승했고,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돼 '야신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팀이 승부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높은 연봉을 감당할 수 없던 유벤투스는 주축 선수들을 이적시켜야 했다. 그 중 부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폰은 유벤투스를 떠나지 않았다. '의리'를 지켰다. 2007~2008시즌 곧바로 세리에A로 올라온 부폰은 결국 2011~2012시즌 무패(23승15무) 우승 신화를 이끌었다.


이탈리아 골키퍼 부폰(왼쪽)이 공을 잡아내고 있다. 키예프(우크라이나)=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대표팀에선 잔루카 팔리우카의 벽을 넘어야 했다. 유로2000 지역예선부터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손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백업 골키퍼 프란체스코 톨도가 대표팀 수문장 자리를 치고 올라왔다. 부폰이 이름을 제대로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했다. 유로2004와 2006년 독일월드컵에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유로2008 때는 주장 완장도 찼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도 든든하게 골문을 지켰다. 벌써 A매치만 116경기를 소화한 베테랑이다. 기량에는 이견이 없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세계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된 것은 2003~2007년(2005년 제외)이다. 2009년에는 지난 20년간 최우수 골키퍼 1위에 뽑혔다. 지난해에는 21세기 최고의 골키퍼에 이름을 올렸다.

잉글랜드가 이 부폰에게 제대로 당했다. 또 다시 '승부차기 징크스'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잉글랜드는 역대 메이저대회 승부차기에서 1승6패를 기록하게 됐다.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악몽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부터 시작된다. 잉글랜드는 준결승에서 독일(당시 서독)을 만나 1대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졌다. 스튜어트 피어스와 크리스 워들이 마지막 2차례 기회를 모두 날렸다. 독일과의 악연은 계속됐다. 자국에서 열린 유로1996 준결승에서 1대1로 비겨 승부차기에 돌입, 6번째 키커였던 사우스게이트가 실축해 다시 한 번 5-6으로 무릎을 꿇었다. 앞서 8강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4-2로 웃은 것이 유일한 승리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16강전에서도 승부차기의 망령에 사로잡혔다.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끝에 3-4로 졌고, 유로2004에서는 개최국 포르투갈을 만나 5-6으로 져 8강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8강에서도 포르투갈과 승부차기까지 벌였으나 또 1-3으로 패했다. 그리고 6년 만에 징크스 탈출을 외쳤지만 극복하지 못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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