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0년이 지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감격과 환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눈만 감으면 그 때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관중들의 붉은 물결, 환희로 가득 찬 경기장. 라커룸에서 파이팅을 외치던 일. 경기 후 관중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춘 일. 모두가 더할나위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개인적으로는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이 한풀이 무대였다. (이)을용이의 도움을 받아 멋진 골을 넣었다. 이 골은 4강 신화의 디딤돌이 됐다. 을용이의 크로스, 나의 슈팅과 골. 세리머니를 하며 달려가 박항서 코치에게 안기던 장면. 지금 다시 재현해보라고 해도 정확하게 할 수 있을만큼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아픔을 훌훌 날려버릴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
한-일드컵 이후 아쉬움도 있었다. 월드컵 직후 축구의 인기는 대단했다. 모두들 축구장으로 몰렸다. 하지만 그 인기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모두의 잘못이다. 금방 퇴색되는 단발성 이벤트에 집중한 감이 없지 않았다. 축구의 인기를 계속 끌고갈 만큼 충분한 원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10년간의 아쉬움 끝에 이제 한-일월드컵 10주년을 맞이했다. 축구에 관련한 모든 이들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100년 대계를 세워야한다. 금방 퇴색 되는 것보다는 팬들의 기억 속에 각인이 되는 이벤트가 K-리그 발전이나 흥행을 위해 바람직하다.
2002년 선수들이 앞장선다
2002년 그라운드 위에서 뛰었던 동료들도 적극 동참할 생각이다. 나를 포함해 지도자가 된 동료들은 이제 정장을 입고 맞대결을 펼친다. 서로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다보니 자존심을 걸게 된다. 더 살벌해진 것 같다. 물론 감독으로서 스트레스는 심해졌다. 하지만 한국 축구 전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2002년 멤버들의 지도자 맞대결이 이슈가 됐다. 이 대결을 보러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도 늘어났다. 한국 축구의 인기를 다시 한번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소스 가운데 하나다. 동료 감독들 역시 '우리 한 몸 희생해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라는 마음가짐이다.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은 동료들도 역시 K-리그 붐을 위해 노력 중이다. (안)정환이는 K-리그 명예 홍보팀장으로 전국 방방곡곡 누비고 있다. 탄천종합운동장이 가득 차면 춤을 추겠다는 공약도 했다. (송)종국이는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다. 춤을 추며 축구를 홍보 중이다. 여기에 축구 해설가로 변신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박)지성이는 얼마전 수원 경기를 찾았다. 지성이를 보러 많은 관중들이 들어찬 모습을 보면서 감명받았다. (이)영표 역시 북미에서 뛰며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자기 자신을 가다듬고 있다.
2002년 받았던 과분한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2002년 멤버들은 언제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황선홍 포항스틸러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