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상처 입은 라돈치치, 귀화 포기할까?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2-05-23 08:56


◇라돈치치. 스포츠조선DB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코리언 드림을 꿈꿨다. 그저 거쳐가는 무대 정도로 생각했다. 조국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아시아 무대를 통해 날아오르고자 했다. '몬테네그로 청년' 제난 라돈치치(Dzenan Radoncic)는 2004년 그렇게 한국땅을 밟았다.

생소한 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동료들과 툭하면 싸웠다. 그러나 '정'의 힘은 묘했다. 어려운 여건에도 서로를 보듬어 주는 마음에 매료됐다. 1년 정도로 생각하고 왔던 한국에 4년간 머물렀다. 잠시 일본 J-리그로 무대를 옮겼으나 다시 돌아온 곳은 조국 몬테네그로가 아닌 '제2의 조국' 한국이었다. 한국어를 익히로 문화를 수용했다. 고향에서 만난 인생의 반려자와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성남을 거쳐 수원에 몸담은 뒤에도 '한국 사랑'은 여전했다. 라돈치치는 한국인으로 살고자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꿈을 꿨다. 때마침 축구협회에서도 제의를 했다. 그렇게 라돈치치의 꿈은 실현될 듯 했다.

첫 번째 귀화 심사에서 좌절을 맛봤다. 지난해 11월 성남 시절 특별귀화 추천을 받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라돈치치 스스로도 자질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절치부심 한국어를 공부했다. 축구협회의 제의가 왔다. 귀화 추천을 해주겠다고 했다. 뛸 듯이 기뻐했다. "태극전사로 거듭나겠다"고 큰소리 쳤다. 라돈치치는 7일 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에 출석해 두 시간이 넘게 '한국인'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진정성을 알렸다. 11명의 법상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라돈치치를 체육 우수 인재로 특별귀화 추천하기로 기조를 잡았다.

뒤통수를 맞았다. 태극마크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귀화를 권했던 축구협회가 발을 뺐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귀화선수 활용 규정(타 회원국 대표로 A대표 출전기록이 없이 5년 동안 한 국가에서 활약한 선수에 한해 귀화를 인정함)을 몰랐다고 했다. 함께 귀화 신청을 냈던 에닝요(전북)는 추천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축구협회가 앞장서 재심을 요청했다. 두 선수간의 차이가 분명했다. 축구계의 한 관계자는 "라돈치치와 에닝요가 서로 다른 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축구협회가 보인 행태를 보면 결국 라돈치치는 에닝요 귀화를 위한 들러리 밖에 되지 않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해 했다.

더 이상 라돈치치의 입에서 한국어를 들을 수 없게 됐다. 라돈치치는 귀화 추천 신청이 철회된 뒤 큰 상처를 받았다. 곧잘 하던 한국어 대신 영어로 소통을 하고 있다. 라돈치치는 평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한국어를 쓰지 않는다. 귀화 추천 과정에서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K-리그 초반 상대팀을 공포에 떨게 했던 골 감각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뒤 자취를 감췄다. 라돈치치의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향후에 일반 귀화를 추진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라돈치치가 선뜻 나설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라돈치치는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이 되고 싶어한다. 팬들이 제작한 '라돈을 국대로'라는 걸개에 자부심을 안고 있다. 수원 구단도 라돈치치가 다시 귀화 의사를 드러낼 경우 협조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두 번의 상처로 인한 생채기가 아물 때 진정한 한국인이 된 라돈치치를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