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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축구 약속지킨 동해안더비-슈퍼매치, 엘클라시코가 부럽지 않았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9-05-06 10:29


슈퍼매치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박주영. 프로축구연맹

'더비'는 전쟁이다.

경마에서 유래된 '더비(Derby)'는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라이벌 경기를 뜻한다. 셀틱과 레인저스의 올드펌더비, 리버풀과 에버턴의 머지사이드더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클라시코 등이 세계 최고의 더비로 꼽힌다. 더비의 분위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비가 열리는 일주일 내내 경기장 안팎은 열기로 들썩인다. 경기 당일 축구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전력차는 상관없다. 오로지 목표는 승리다. 카드가 난무할 정도로 거친 축구도 불사한다. 그런 모습에 팬들은 열광한다. 매경기가 소중하지만, 더비가 특별한 이유다.

K리그에도 더비가 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그간 K리그의 더비는 '노잼'이었다.

스토리는 넘쳤다. 하지만 정작 경기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미디어데이에서는 저마다 공격축구를 다짐했지만, 막상 휘슬이 울리면 정작 그라운드에 펼쳐지는 것은 '지지 않는 축구'였다. 선수들은 얌전했고, 감독들은 조심스러웠다. 긴장감은 넘쳤지만, 팬들을 흥분시킬만한 요소는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딱 맞았다.


어린이날 주간, 열린 두 번의 명품 더비는 달랐다. 4일 열린 동해안더비(2대1 포항 승)와 5일 펼쳐진 슈퍼매치(1대1 무)는 K리그 최고의 더비 다웠다. 엘클라시코 못지 않은 박진감 넘치는 축구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경기 전부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미디어데이에서는 말의 전쟁이 펼쳐졌다. 신진호(울산)는 "서울로 이적하면서부터 포항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런 감정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안에서 올라온다.(웃음) 그런 친정팀 상대로 세리머니 안하는 게 예의지만 저는 포효하는 세리머니 하겠다"고 했다. 슬라이딩하며 거수 경례하는 세리머니를 약속했고, 김도훈 울산 감독도 화답하겠다고 했다. 2017년 동해안더비에서 울산 유니폼을 두 골을 넣었던 정재용(포항)은 "울산 시절우승은 못해도 포항에 지면 안된다는 얘기 있었다. 포항도 마찬가지더라. 죽기살기도 아니고 죽기로 뛰겠다"고 약속했다.

감독들은 공격축구를 다짐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예전 슈퍼매치를 복기해보면, 재미난 경기를 많이 했는데, 한 번은 0대0 경기를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 경기는 피하고 싶다. 서로 득점을 하는, 팬들이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공격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물론, 무승부보단 승리가 낫다"며 필승 의욕까진 감추지 않았다. 이임생 수원 감독은 "서울이 전북전에서 한 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공격적으로 임했다. 그런 마인드로 경기를 하면 팬들한테 많은 걸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약속을 지켰다.


스타트는 동해안더비가 끊었다. 포항과 울산은 화끈한 공격축구로 나섰다. 템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버금갈 정도였다. 보는 내내 넘치는 박진감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이날만큼은 수비축구로 비판받던 울산은 없었다. 전력상 한수 아래로 평가받던 포항도 수비 대신 공격축구로 무장했다. 리드를 잡은 뒤에도 수비 보다는 공격적인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선수들도 약속을 지켰다. 정재용은 정말 죽어라 뛰었다. 한솥밥을 먹던 울산 형들과 몸싸움도 서슴치 않았다. 다른 포항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대 슈팅이 나올때마다 몸을 날려 막아냈다. 신진호는 세리머니에 성공했다. 전반 31분 김보경의 패스를 받아 멋진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한 신진호는 슬라이딩하며 김도훈 감독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김도훈 감독도 경례로 답했다. 울산 팬들이 열광했다.

다음날 열린 슈퍼매치도 이에 못지 않았다. 수원과 서울 모두 쉴새없이 치고 받았다. 물러섬은 없었다. 이임생 감독은 한수위로 평가받던 서울을 상대로 특유의 '노빡꾸 축구'를 펼쳤다. 최용수 감독 역시 예고대로 끊임없이 앞으로 나갔다. 1대1로 마무리됐지만 골로 연결될 수 있는 장면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수원 삼성이 올 시즌 첫 번? 슈퍼매치에서 1대0 승리했다. 프로축구연맹
이야깃거리도 풍성했다. 최용수 감독이 "몰래 수원으로 가서 불쾌하다"고 했던 '푸른' 데얀이 선제골을 넣었다. 그는 서울팬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았다. 대미는 노동건(수원)과 박주영(서울)이 장식했다. 추가시간 서울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박주영이 키커로 나섰지만, 노동건이 멋지게 막아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추가시간 또 한차례의 페널티킥이 나왔고, 이번에는 박주영이 성공시키며 기어코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올 시즌 조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K리그는 위기다. 이를 넘기 위한 답은 다들 알고 있다. 깨끗하고 재밌는 승부를 보여주면 된다. 매 시즌 초마다 모든 팀들이 앵무새처럼 공격축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그라운드에서 진짜 공격축구를 찾기는 어렵다. 이번 두 번의 더비처럼 하면 된다. 매경기가 동해안더비, 슈퍼매치처럼 펼쳐진다면 K리그 보지 말라해도 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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