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 발레'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는 빌리(성지환·오른쪽)와 어른 빌리(백두산).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
2000년 이후 등장한 뮤지컬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지금 서울에서 공연 중이다.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한 '빌리 엘리어트'가 그것이다.
뮤지컬 역사에서 마지막 황금기는 1980년대였다. 이른바 '빅 4'로 불리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로 대표되는 '천재의 시대'가 저물면서 뮤지컬계는 슬럼프에 빠진다. 그러다 아바(ABBA)의 히트곡으로 만든 '맘마미아!'(1999)가 블록버스터의 계보를 되살렸고, '위키드'(2003)에 이어 런던에서 탄생한 '빌리 엘리어트'(2005)가 뮤지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
◇빌리(김현준)와 마이클(강희준)의 'Express Yourself'.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
2010년 LG아트센터 초연 이후 7년 만에 돌아온 '빌리 엘리어트'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에너지와 촘촘한 만듦새로 명불허전의 감동을 담아낸다. 공동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노하우가 만들어낸 시너지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히트영화(2000)를 원작으로 한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폐광 위기에 처한 영국의 북부 도시가 배경이다. 여기에 탄광촌과 어울리지 않게(?) 발레에 재능이 있는 12살 소년 빌리가 있다. 그런데 집안이 가난한데다 아버지는 실직 직전이다. 이 아이의 재능과 꿈, 미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작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 빌리 역의 김현준군은 '빌리 스쿨'에서 1년 넘게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발레는 물론 탭댄스, 아크로바틱, 재즈댄스, 힙합 등 다양한 춤을 소화하며, 노래와 연기를 더해 희망과 불만,꿈이 뒤섞여 있는 '빌리'가 되었다. 아빠의 반대로 오디션 참가가 불발되자 화가 나 절규하는 '앵그리 댄스(Angry dance)'에서는 '옆에 있다간 한 대 맞을 것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고,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미래의 빌리와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2인무 '드림 발레(Dream ballet)'에서는 객석을 잠시 달콤한 꿈속으로 이끈다.
"춤을 줄 때 어떤 기분이 들죠?"라는 질문에 "새들처럼 날아오르는 그 느낌, 내 몸 안에 전기가 흘러 자유를 얻죠"라고 답하며 춤추는 '전기(electricity)'는 이 작품의 백미다. 하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빌리의 몸은 한들한들 무대를 휘젓고,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인다. 극장 안의 모든 시선은 무대 위 한 소년으로 집약되고, 시간은 잠시 숨을 멈춘다.
|
◇빌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끌어주는 윌킨슨 부인(최정원)과 발레 소녀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
장르적 관점에서 이 작품의 숨은 주인공은 피터 달링의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드라마틱한 안무다. 주인공 빌리의 움직임 뿐아니라 빌리와 마이클의 우정, 경찰과 주민들과의 갈등, 좌절과 희망을 몸짓에 녹아내 이야기로 풀어낸다. 피터 달링은 20세기를 풍미했던 브로드웨이의 안무가 밥 포시와는 다른 색깔로, 고전적인 발레를 혁신해 전면에 내세운 뒤 의자와 인형같은 간단한 소품만 갖고도 훌륭한 '몸의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아이디어의 힘이다. '춤 따로, 노래 따로, 연기 따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국내 뮤지컬과는 사뭇 다르다.
마이클 역의 강희준과 발레 소녀들은 귀엽고 깜찍하다. 여기에 베테랑 최정원이 윌킨슨 부인 역으로, 박정자가 할머니 역으로 뒤를 받치며 앙상블을 이룬다.
'빌리 엘리어트'는 탄광촌의 처절한 생존 투쟁을 씨줄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빌리의 '투쟁'을 날줄로 하여 교차하며 전개된다. 무거운 리얼리즘과 예술적 판타지를 적절하게 엮으며 도달한 종착역은 휴머니즘이다. 뮤지컬이란 장르가 지속적으로 살아남아 팬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만들어야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다. 내년 5월 7일까지.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KBL 450%+NBA 320%+배구290%, 마토토 필살픽 적중 신화는 계속된다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