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헬퍼' 사태, 어째서 LOL 팬들은 폭발했는가?

최호경 기자

기사입력 2016-03-31 17:25


최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이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을 즐기는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긴 분량이지만 내용은 단군하고 명확했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측이 '헬퍼'(게임 플레이의 모든 측면을 강력하게 돕는 비인가 프로그램) 판매자들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 유저들은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해당 게시글의 진위여부는 접어두더라도, 문제는 유저들이 진위여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의혹제기에 '반응'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에 귀를 솔깃하는 정도가 아닌 '그래! 그런 거 같았어!' 하는 동의의 의미를 내포하는 반응이었다.

사실 이번 '헬퍼 봐주기 논란' 이전에도 라이엇게임즈의 운영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여론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은 유저들의 갑갑한 마음을 막아두고 있던 수문을 개방하는 버튼을 누른 셈이다. 댐의 열린 수문으로 방류 하듯이, 계기를 만난 유저들의 불만은 순식간에 쏟아졌다.

이에 라이엇게임즈의 이승현 대표가 게시글이 올라온 커뮤니티에 직접 사과문을 게시했다. 하지만 이승현 대표의 이례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불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LOL 팬들이 이렇게까지 큰 불만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몇 가지 이유로 간추릴 수 있다.

<사과글은 어째서 특정 커뮤니티에만 올라왔는가?>

이승현 대표는 사건의 지원지라 할 수 있는 '헬퍼 논란' 게시글이 올라온 커뮤니티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는 결단을 내렸다. 쉽지 않은 결단이다. 아이디까지 만들어가며 스스로 게시글을 적는 행동은 물의를 일으킨 여느 기업의 대표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행보다.

하지만 '헬퍼'에 대한 문제의식은 LOL을 즐기는 모든 이들이 지니고 있고 인지하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의식이지, 특정 커뮤니티에서만 공론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특정 커뮤니티에만 사과를 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자칫 사태를 묻어두고 넘어가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진원지에서 시작'된 일이지 '진원지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사과를 하고도 이번 게시글을 본 사람들에게만 사과를 하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 자체를 숨기려고 하는 이미지를 유저들에게 심어준 셈이다.




<초점이 잘못 잡힌 사과문>

이승현 대표의 사과문을 보고 유저들이 더욱 폭발한 것도 앞서 언급한 사례와 유사하다. 대화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 했고, 당시 라이엇게임즈가 방문한 카페는 이미 폐쇄된 것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는 유저들의 속을 조금도 달래줄 수 없었다. 검색만 해도 헬퍼에 대한 정보가 수두룩하게 뜨고, 공공연하게 헬퍼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은 결코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군다나 유저들의 성토는 '헬퍼' 이용자들 전체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헬퍼 이용자들에 대한 조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유저들은 라이엇게임즈를 방문했던 그 '헬퍼' 관계자들만을 처벌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헬퍼' 판매와 사용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라이엇게임즈의 강경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특정 카페 하나 폐쇄했다는 이야기는 라이엇게임즈가 사태의 심각성과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왜 이제야 공식적인 대응을 했는가?>

'헬퍼'에 대한 논란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있었다. 이로 인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았고,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굉장히 많았다. 공정한 룰 속에 펼쳐지는 대결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라는 뉘앙스로 라이엇게임즈는 LOL을 설명해 왔다. '헬퍼'는 이런 LOL의 근간을 뒤흔드는 암세포였고, 유저들은 이런 암세포의 박멸을 원해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라이엇게임즈는 이런 목소리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을 한 적이 없었다. 피해를 보는 이들은 늘어만 갔고, 유저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퍼져가는데도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지난 몇 년간 유저들은 자신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라이엇게임즈 측에 대한 불신이 조금씩 커져왔던 것이다.

물론, 라이엇게임즈 측도 할 말은 있다. 실제로 3만 명이 넘는 '비인가 프로그램' 이용자의 계정을 영구정지 시켰으며, 계속해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16년 1월에 접어들어서는 예년보다 더욱 강력한 방식으로 이를 찾아내고 있다. 다만, 제재 명단을 공개하는 식의 행보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 라이엇게임즈 측의 변이다.

<왜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느낌을 주는가>

지금까지 LOL 내에는 다방면에 걸쳐 유저들의 불만이 있어왔다. 이 중에는 해결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나름의 해결책이 구성되어 사태가 진정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LOL 유저들은 라이엇게임즈의 대응이 늦다고 이야기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유저들의 이야기가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대리기사' 문제와 '드랍핵' 문제는 국내에 LOL이 서비스되기 시작한 시즌2때부터였고, 이때부터 많은 이들이 이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시작된 것은 시즌3에 접어들어서였다. 이미 1년 가량 대응이 늦은 셈이다. 그나마 '대리기사' 문제는 북미 레딧에 올라온 한 청소년 유저의 호소가 북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국내 대응이 더욱 늦어졌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늦게라도 대응에 들어갔다는 점과 그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은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이엇게임즈의 이러한 행보가 비판받는 이유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항상 유저들이 해당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커뮤니티를 통해 알리고 이것이 '공론화' 된 이후에야 이뤄졌다는 점에 있다.

즉, 유저들이 게임에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찾아서 알려주기 전에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유저들 사이에 쌓였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라이엇게임즈에 대한 불신의 또 다른 종류다.




<말로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

많은 유저들이 LOL의 운영을 두고 입을 모아 악성 이용자에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느슨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게임 내 욕설과 트롤링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에도 말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트롤러들을 처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유저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라이엇게임즈는 해당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닌 심리학자를 영입해 악성 유저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를 통한 해결책을 찾겠다고 나섰던 사례다.

그리고 게임에는 유저들이 바른 길로 향할 수 있는 캠페인 문구가 로딩 화면 중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욕설을 하지 않는 소환사가 있는 팀의 승률이 더 높습니다' 류의 문구 말이다. (당시 해당 문구를 본 한 유저의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인과관계가 바뀌었네. 이기고 있으니까 욕을 할 일이 없지. 이게 심리학자 영입의 효과냐?')

물론 라이엇게임즈가 이러한 이들을 제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인원이 기간제 계정정지, 영구 계정정지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통한 경고효과가 없다보니, 악성 유저들은 자신이 직접 처벌을 당하기 전까지는 심리적인 제한선 없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는 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온라인게임에도 적용된다는 좋은 사례다.

<팬들이 화난 진짜 이유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

누차 이야기하지만 이번 사태는 '헬퍼 논란'으로 인해 불거졌을 뿐이지, '헬퍼'에만 국한된 일이라 할 수 없다. 라이엇게임즈의 운영방침에 대한 유저들의 불신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헬퍼' 이용자만 제제하면 가라앉을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번 사태로 인해 끓어오르는 유저들의 반응은 잠잠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저들이 화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오로지 '헬퍼' 문제만 해결한다면, 추후에 다른 계기가 또 단초가 됐을때 다시 한 번 끓어오르는 팬들의 반응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김한준 게임 담당 기자 endoflife81@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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