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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메이저리그의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한 박병호가 넥센 히어로즈 소속으로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 박병호와 함께 덩달아 유명세를 탄 인물이 있다. '국민거품박병호', 통칭 '국거박'이라 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박병호는 리그 최고의 선수. KBO 역대 최고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국거박'의 리플만 보고 있으면 박병호는 무척이나 형편 없는 선수였다. 잘하는 날보다 못 하는 날이 훨씬 많고 상대의 패전처리조를 상대로만 홈런을 치는 그런 선수 말이다.
행여라도 박병호가 부진한 날이 오면 '국거박'의 악플은 더욱 불을 뿜었다. 물론 박병호가 다시 부진을 털고 활약하는 날이면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다시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여지 없이 나타나 그를 향해 날선 비난을 던지고는 했다. 넥센 히어로즈 구단과 박병호 측이 법적대응을 고려 중이라는 말 할 정도였고, 이에 대중들이 환호를 보낼 정도였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국거박=악플러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자'라는 공식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 19일 진행된 LCK 스프링 시즌 2라운드 진에어 그린윙스와 CJ 엔투스와의 경기가 세트 스코어 2:1로 진에어 그린윙스의 승리로끝난 후, e스포츠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와 뉴스 게시판에는 '국거박'의 분신들이 대거 등장했다. 3세트에서 다소 무기력하게 패배한 CJ 엔투스에 대한 비판을 하는 이들이었다.
선수가 조금만 잘못해도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이 날아드는 것이 LOL e스포츠판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롤판의 재평가는 3초마다 이뤄진다'는 말이 있을까. 이런 팬 문화에 부담감을 느끼는 선수들의 발언이 드물지 않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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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멘탈이라 말하는 선수들의 심리상태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종목을 불문하고 지대하다. 구기 종목에서는 30대 초중반의 베테랑 선수들도 심리상태 때문에 성적이 들쭉날쭉하게 나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연령대가 주로 20대 초반에 집중되어 있는 LOL e스포츠 선수들의 경우는 더욱 심리상태에 따라 경기력이 좌우될 수 있는 문제다. 이러한 팬들의 과도한 비난은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수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나 대응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구단 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이를 제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e스포츠 구단들이 '국거박 사태'를 두고 넥센 히어로즈가 한 것과 같은 악플러를 향한 법적대응을 표명하기는 어렵다. 구단 운영하기 위해 준비된 인력의 수가 현저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전문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어리기 때문에 법적인 대응을 하게 될 경우에 오히려 선수들의 경기력에 더 큰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도 구단측의 강경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한 번 팬이 되기로 마음 먹으면 어지간해서는 응원하는 팀을 바꾸지 않는 구기종목의 팬문화와는 달리 응원하는 팀을 상대적으로 쉽게 바꾸는 팬문화 역시 이런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아무래도 종목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역사가 구기종목에 비해 그리 긴 편이 아니기 때문에 팬들의 구단을 향한 충성심도 흐릿한 편이기에, 자칫하면 구단 정통성이 성립되기 전에 팬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
결국 상처받는 것은 선수들이다. 이러한 압박감을 이겨내야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경기를 잘 하면 될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과도한 압박감은 경기력 저하를 불러올 뿐이다. '현실이 싫으면 노력하면 될 일 아니냐'고 말하는 기성세대의 '근성론'을 부정하면서도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에게 그런 '근성론'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자기모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팬덤 스스로의 자정작용을 기대하기에는 이미 선수들을 향한 비난의 수준이 정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구단 측의 좀 더 적극적인 보호 정책이 필요한 것이 지금의 LCK다.
김한준 게임 담당 기자 endoflife81@gam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