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의 투혼은 아름다웠고, 알파고의 능력은 놀라웠다.
자신의 주 무기인 '선(先)실리 후(後)타개' 전략을 들고 나온 이 9단은 우하귀와 우상귀에서 상당한 집을 지으며 초반 우위를 확보했다. 알파고는 이 사이 중앙에서 우변에 걸쳐 두터운 세력을 형성했고, 좌하 귀에도 집 모양을 만들었다. 이 9단은 이후 끈질기게 삭감에 나섰지만 알파고는 유연하게 대처하며 미세한 우위를 끝까지 유지했다.
끝내기까지 초 박빙 국면이 이어졌지만 인공지능의 계산력은 인간을 압도했다. 공개해설을 맡은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한 집 반 이상의 우위를 유지했다"며 "알파고의 끝내기 수순은 프로 기사들이 배워야 할 수준"이라고까지 말했다. 알파고는 후반에 팻감을 없애는 의미없는 교환 수 두어개를 두어 '4국에서처럼 혹시 버그(오류)가 난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감(?)을 주기도 했으나 승패에 영향은 없었다.
4000년 동양역사의 정수이자 가장 고난도 두뇌게임인 바둑이 기계에 패배했다는 사실은 바둑계는 물론 전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초반 이 9단이 3연패를 당하자 한국바둑계는 "이제 바둑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에 휩싸였고, 인공지능의 수준이 보통 상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에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됐다. 하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는 분석도 많다.
아울러 '인간 대표'로 나선 이세돌 9단의 끈질긴 투혼과 도전은 '인간적인 가치와 직관'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아직 완벽에 이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경각심을 던져주었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