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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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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디스는 힙합신의 자연스러운 문화다. 공격적인 어투와 단어를 사용하지만 본질은 서로의 실력을 겨루고 이런 과정에서 함께 실력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미국 랩퍼 켄드릭 라마 '컨트롤'이 좋은 예다.
그런데 현 디스전은 얘기가 좀 다르다. 너도 나도 켄드릭 라마 '컨트롤' 비트를 사용해 '컨트롤' 대란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번 전쟁은 디스라기 보다는 폭로전에 가깝다. "센스가 쫓겨날 때 넌 다듀와 손잡아. 걔가 자고 있을 때 내용증명서를 보내"(스윙스 '황정민', 쌈디 디스) vs "센스랑 베프라면서 속사정은 X도 몰라, 하나하나 다 얘기해줘야돼?"(쌈디 '컨트롤', 스윙스 맞디스), "휩쓸리는 건 너같이 관심병 환자들 뿐. 암적인 존재. 니 존재 자체가 독"(개코 '아이 캔 컨트롤 유', 이센스 맞디스) vs "2년 뒤 내게 내민 노예 계약서. 진짜 손해가 얼마냐 물었더니 그거 알고 싶으면 회사한테 소송을 걸라고? 2억 주고 조용히 나가면 8억을 까주겠다고? "(이센스 '트루 스토리', 개코 디스), "말발이 좀 되니까 사길쳐? 몰랐지 그땐. 사무실 월세 내는 게, 매니저형 집 보증금이 내 투자금인 게. 몇천이라던 투자금이 단 오백이었던 게"(지백 '루즈 컨트롤', 아웃사이더 지적)라는 등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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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전이 가열되면서 논란이 야기됐다.
대표적인 예가 노이즈 마케팅 논란이다. 디스곡을 발표하거나 예고하기만 해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해당 랩퍼들의 이름이 올랐기 때문. 아메바컬처 등 해당 소속사는 극구 부인했지만, 의혹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디스전이 노골적인 폭로 및 비방전으로 변질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특히 이센스, CYMK 등은 전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를 화두에 올려 법적 분쟁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관계자들은 "노이즈 마케팅이건 아니건 그게 문제가 아니다. 힙합신에서 디스는 일종의 게임이다. 서로 실력을 지적하며 랩 배틀을 벌이고, 이런 과정에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젠 서로의 아픈 과거사나 계약 문제 등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했던 문제들을 공론화하며 물고 뜯고 있다. 이렇게 선을 넘어버리면 감정 싸움밖에 안된다. 더욱이 이런 일을 표면에 올리면 법적 문제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전했다.
유명세를 얻기 위한 참가자들도 디스전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타이미-컨트롤'을 공개한 여성 랩퍼 타이미가 대표적인 예다. 오랜 기간 힙합신에서 활동했던 만큼, 자신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디스곡을 발표한 건 '묻어가기'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네티즌들은'이젠 디스를 넘어 뜨고 싶어 낄 데 안낄 데 구분 못하는 인간이 설쳐대서 짜증난다'(besc****), '지금이 기회다 이건가?'(ah18****)라는 등 쓴소리를 남겼다.
가만히 있다 폭탄을 맞은 피해자도 생겨났다. 다이나믹듀오 최자 얘기다. 이센스가 디스곡 '유 캔트 컨트롤 미'에서 최자를 퇴물로 표현하면서 최자와 퇴물을 합쳐 '퇴자'란 오명을 얻게된 것. 동료 개코가 '아이 캔 컨트롤 유'에서 "힙합 대물과 낸 앨범 대박"이라며 동료의 굴욕에 분개했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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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퍼들의 제 살 깎아먹기 속에 본의 아니게 이득을 본 케이스가 있다. 데프콘은 디스전이 진행되는 사이에 앨범을 발표, 해맑게 SNS 홍보에 나서 '힙합 비둘기'란 애칭을 얻었다. 평화의 상징이란 뜻이다. 네티즌들은 '사랑 듬뿍 받는 힙합 비둘기', '평온한 모습 보기 좋다'는 등 호응을 보냈다.
이처럼 아름다운 예도 있지만, 곰이 재주 부리는 동안 계산기 두드리는 '왕서방'도 있다. 바로 CJ E&M이다. CJ E&M은 9월 7일 국내 유일 초대형 힙합 페스티벌 '2013 원 힙합 페스티벌(이하 원)'을 개최한다. 해당 페스티벌에는 이번 디스전에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연한다. 디스전의 시발점이 된 스윙스부터 스윙스의 디스 대상이 된 어글리덕, 이밖에 디스곡에서 언급된 버벌진트 산이 빈지노 R-EST 매드클라운 제이켠 등이 포함됐다. 이에 온라인에서 시작된 디스전이 오프라인까지 번질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런 관심을 입증하듯 예매사이트 주간 랭킹 20위권에서 머물렀던 '원'은 23일 본격적인 디스전 발발 이후 주말간 예매 순위 3위로 뛰어올랐다. 현재도 5~6위권의 높은 예매 순위를 기록 중이며 포털 사이트 공연 일간 검색 순위 역시 1위다.
그러자 CJ E&M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들은 "그간 잠잠했던 한국 힙합신이 디스전으로 음악, 문화적인 측면에서 힙합 장르가 대중들에게 좀 더 알려지게 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디스 또한 힙합 문화의 한 측면인 만큼 스윙스 어글리덕 등 '원'에 출연하는 디스전 주인공들의 모습도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며 즐거워했다.
관계자들은 "이번 디스전의 최대 수혜자는 CJ E&M일거다. '원'에 큰 관심이 없던 대중들도 디스전이 벌어지면서 실제 디스를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공연 티켓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이런 기세라면 페스티벌은 대성공하는 거다. 결국 랩퍼들간의 공방전이 CJ E&M만 도와주게 된 셈"이라고 씁쓸해했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