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능계도 '온리 원(Only 1)' 전략으로 승부해야 할 때가 됐다. 톱 MC와 스타 게스트에만 의지하는 '넘버 원(No. 1)'의 시대는 끝났다. 시청자들은 이제 예능인들에게 존재 자체로 눈길을 끄는 특별함과 차별화된 개성을 요구한다. 나이, 경력, 출신, 국적, 이 모든 것이 예능에선 웃음을 위한 재료이자 '스펙'으로 활용된다. 황혼의 나이에 예능에 도전한 노배우들, 비호감 정치인 출신 방송인, 걸죽한 입담을 뽐내는 외국인까지. 예능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온리 원'들을 살펴봤다.
사실 유럽 배낭여행이라는 포맷 자체는 그다지 색다르지 않다. 그러나 할배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제대로 통했다. 평균 연령 76세, 연기경력 합계 206년. '할배 H4'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의 무시무시한 스펙이다. 80세 맏형 이순재는 목적지를 향한 거침없는 행군으로 '직진 순재'라는 애칭을 얻었고, 70세임에도 졸지에 막내가 된 백일섭은 시종일관 투덜대면서도 형들의 커피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 귀여움으로 '국민 막내'에 등극했다. 알고 보니 로맨티시스트인 회장님 전문 배우 74세 박근형은 파리와 어울리는 패션감각을 뽐내며 낭만을 즐겼고, 78세 '구야형' 신구는 과거에 흉물로 비난받았으나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을 바라보며 젊은이들에게 새롭고 가치 있는 도전을 꿈꾸라고 조언했다. 통제를 벗어난 할배들의 리얼한 웃음뿐 아니라 그들이 들려주는 인생의 지혜까지 놓치지 않는 제작진의 세심한 연출력은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미덕이다.
웃으며 보다가 진한 감동을 얻게 되는 '꽃보다 할배'. 예능 블루칩이 된 할배들은 오는 24일 대만으로 두 번째 배낭여행을 떠난다. 써니, 현아와 여행한다는 말에 낚여 '국민 짐꾼'이 된 43세 이서진도 할배들의 매력에 빠져 또 한번 짐을 쌌다. 할배들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은 '온리 원'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
일부에선 '이미지 세탁'이라고 비난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 스스로도 은근히 '야망'을 내비치고 있으니 말이다. 비호감 정치인에서 입담 좋은 방송인으로 변신한 강용석. 요즘 그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래서 정치인 강용석은 싫지만 방송인 강용석은 좋다는 이분법적 태도를 보이는 시청자도 많다.
강용석은 정치인 시절의 흠결을 스스로 풍자하는 '셀프 디스'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간다. 그 시작은 '고소'였다. 개그맨 최효종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한 사건을 활용해 '고소고발남'이란 타이틀로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했고, Mnet '슈퍼스타K 4' 예선에 나가서는 정치인이 아닌 두 아들의 아버지로 어필했다. 이후 tvN '고소한 19'의 MC가 되더니,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과 '유자식 상팔자'까지 꿰찼다. 변호사와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경험과 풍부한 지식,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뒷이야기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점차 호감도를 높여 갔다. 특히 '썰전'에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의 정치토론 배틀은 강용석에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보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안겼다.
강용석에 대한 평가와 호감도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근엄한 정치인이었다가 대중의 놀림거리를 자처하는 방송인으로 변신한 사례는 강용석이 유일무이하다. 그런 점에서 방송계에서 강용석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호시탐탐 정치 재도전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나아가 2017년 대선까지 그의 행보를 예의주시해야 하겠지만, 어찌됐든 2013년 현재의 그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지닌 탐나는 방송인임에 틀림없다.
|
요즘 예능의 대세가 된 MBC '일밤-진짜 사나이'는 독특한 캐릭터를 여럿 배출했다. FM 병사 김수로, 타이틀 부자 류수영, 구멍 병사 손진영, 아기 병사 박형식, 유격왕 장혁 등 전 출연진이 매번 화제를 모으며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그러나 제작진의 '신의 한수'는 분명 샘 해밍턴이다.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20대 남자라면 의무적으로 22개월씩 군 복무해야 하는 나라에서 외국인인 샘 해밍턴의 군대 체험기는 우리에겐 익숙한 군대 문화를 타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모든 말이 '다'나 '까'로 끝나야 하고 '요' 자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군대 언어가 샘 해밍턴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요지경'처럼 느껴질 것이다. 때문에 그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가장 큰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이면서 군대 문화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곤 한다.
모든 훈련에서 구멍이자 고문관으로 활약하는 샘 해밍턴은 캐릭터 자체로도 인기다. 깜짝 공연을 펼친 걸그룹을 쫓아가다 바지가 흘러내리기도 하고, PX 음식을 흡입하며 '군대 먹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외국인이면서 한국인보다 더 걸죽한 입담을 뽐내 반전의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경직된 군대 문화가 거부감 없이 여성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도 샘 해밍턴의 공이 크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