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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방극장은 '꽃중년' 배우들의 독무대였다. SBS '추적자'의 손현주와 김상중, SBS '신사의 품격'의 장동건, 김수로, 이종혁, 김민종, MBC '골든타임'의 이성민 같은 40대 남자배우들이 관록 있는 연기를 앞세워 '아저씨 신드롬'을 몰고 왔다. 하지만 최근엔 다시 20대 '꽃미남' 배우들이 힘을 내면서 거침없이 안방을 장악하고 있다. 과거 20대 배우들이 스타성이 필요한 트렌디 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하던 것과 달리, 요즘엔 100억짜리 대작이나 정통멜로물, 복수극 같은 선 굵은 작품에 출연하며 주인공의 무게감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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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에 앞서 KBS의 수목극 흥행을 책임졌던 주원 또한 자신의 첫 단독 주연작 '각시탈'을 성공시키며 연기력에 흥행력까지 갖춘 배우로 성장했다. 친일경찰 이강토와 독립운동가 각시탈,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가는 복잡한 내면 연기를 매끄럽게 소화해낸 그는 어느새 기대주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원톱배우로 우뚝 섰다. 각시탈과 맞선 '이유 있는 악역' 기무라 지를 연기한 박기웅도 주목받는 20대 남자배우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다. 두 사람은 젊은 배우들이 100억짜리 시대극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일부의 우려 섞인 시선을 기분 좋게 깨뜨렸다.
월화극엔 SBS '신의'의 이민호와 류덕환이 고군분투 중이다. 고려의 공민왕을 진정한 군주의 길로 이끄는 '최영 장군' 이민호, 그리고 원나라에 맞서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해가는 '공민왕' 류덕환의 빼어난 연기 호흡은 '신의'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SBS 주말극 '다섯손가락'의 주지훈도 출생의 비밀과 선악구도로 짜여진 극의 중심에서 어머니에게 내쳐진 분노와 상처받은 감성을 훌륭하게 표현해내면서 드라마틱한 복수극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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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0대 남자배우들이 묵직한 존재감을 갖게 된 데는 시청자들의 소비 트렌드 변화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과거엔 가볍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소재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다면, 요즘엔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들이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추적자'나 '유령' '골든타임' 같은 사회고발성 드라마들이 성공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작품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배우들의 연기력도 중요해졌다.
SBS 드라마국의 김영섭 EP(총괄 프로듀서)는 "송중기, 이민호, 주지훈 같은 배우들은 연기의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우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같은 또래의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과는 달리 뛰어난 연기력과 무게감을 갖추고 있다"면서 "연기의 진정성이 필요해진 상황과 맞물려 연기를 잘하는 젊은 배우들이 더 주목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EP는 "시청자들이 여자주인공에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바란다면 남자주인공에게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며 "20대 연기 전문 배우들은 감정의 폭이 깊기 때문에 작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할 때 연륜이 적다는 점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시청자들의 젊어진 감성도 20대 배우들의 활동폭을 넓히는 요소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40~50대 여성 시청자들도 활발한 사회활동 덕분에 20~30대 못지않은 젊은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20대 남자배우들의 팬층도 더 넓어졌다. 제작사도 캐스팅 단계에서 가능성 있는 20대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