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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말다툼은 '너희 아들이 잘못했다' '당신 아들도 딱히 잘 한 건 없다'를 뛰어 넘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잠깐의 만남에서 서로에게서 발견한 무례함과 위선을 폭로하고, 화살을 돌려 오래도록 배우자를 향해 쌓였던 불만을 털어 놓는 것이다. 서서히 불붙은 언쟁은 치졸한 빈정거림과 헐뜯기로 이어지고, 양쪽 부모들의 싸움이 각자의 부부싸움으로 번지다가 남녀 간의 성대결로 확산되더니 급기야 고성과 난투까지 오간다. 이 과정에서 단란하고 여유로워 보였던 부부들이 실은 많은 문제를 봉인한 채 살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대학살의 신>은 고상한 중산층 거실에서 벌어지는 네 남녀의 촌극을 통해 인간의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품위를 높이려 격식을 차리고 허세를 부리거나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곤 한다. 그러나 본성을 숨기는 게 어디 그리 쉽나. 때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놓고 시원하게 진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소통 아닐까. 소통이 부재한 관계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거울을 활용해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거실에 걸린 거울에 인물들이 비춰진 장면이 적잖이 나오는데, 이것은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그들을 풍자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을 진솔하게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학살의 신 덕분에 사상 최악의 오후를 맞이한 네 사람은 비록 체면은 구겼지만 앞으로는 보다 투명하고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정미래 객원기자, Filmon (http://film-o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