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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KIA 강동희(현 동부 감독)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릴 때 연세대 이상민(현 삼성 코치)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노련미의 강동희와 패기의 이상민, 신-구 가드 싸움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강동희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상민이 프로무대를 주름잡고 있을 2000년대 초반에는 동국대 출신의 무명가드 김승현이 화려한 플레이로 코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김승현이 부상 등으로 주춤한 이후 가드라인을 지배한 선수가 바로 양동근이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2004년 모비스에 입단한 양동근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경기운영과 정확한 외곽슛,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강력한 대인방어를 앞세워 최고선수로 등극했다. 5억7000만원이라는 연봉이 그의 가치를 증명한다.
양동근이 최고 자리에 오르기까지에는 그의 성실함이 바탕이 됐다. 경기 중 레이업슛을 놓치자 체육관에 홀로 남아 레이업슛 300개를 끝마쳤다는 건 유명한 일화. 유재학 감독 특유의 혹독한 훈련을 군소리 없이 소화해낸다. 다른 가드들과의 몸싸움에서 앞서기 위해 발달시킨 우람한 상체 근육도 성실함의 증거. 상다른 팀 감독들은 양동근을 향해 "5억짜리 선수가 3000만원짜리 선수처럼 뛴다"며 그의 성실함에 혀를 내둘렀다.
두 사람의 이번 시즌 맞대결은 숙명과도 같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팀 내 역할이 판박이다. 정통 포인트가드였던 양동근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신인 김시래가 입단하며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 자리를 모두 소화하고 있다. 지난 시즌 슈팅가드로 뛰었던 김선형은 문경은 감독의 방침 아래 이번 시즌 포인트가드로 포지션 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주희정이 코트에 들어설 때는 슈팅가드로 돌아선다.
팀 1위 싸움에 올스타 최다득표 경쟁까지
참 재미있는 대결 구도다. 팀 소속 선수로, 그리고 개인으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두 사람의 운명이다.
일단 모비스와 SK의 선두경쟁이다. 공동 1위를 달리던 양팀은 20일 모비스의 홈인 울산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후배 김선형의 판정승. 개인 기록은 11득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 3스틸의 양동근과 8득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의 김선형이 비슷했다. 하지만 SK가 승리를 거두며 단독 선두로 치고나갔다. 특히, 승부처이 4쿼터 막판 양동근은 김선형의 돌파에 이은 쐐기골을 그대로 지켜봐야만 했다. 두 사람의 1대1 상황에서 김선형은 동료 애런 헤인즈의 스크린을 이용, 양동근의 수비를 제쳤고 상대 외국인 선수의 블록슛을 피하며 레이업슛을 성공시켰다.
물론, 아직까지 개인 능력을 놓고 봤을 때는 양동근의 손을 들어주는 전문가들이 많다. 경험도 경험이지만 가드로서 갖춰야 할 안정감과 외곽슛 능력에서 더욱 높은 점수를 받고있기 때문.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팀의 간판으로 팀 성적에 따라 서로 간의 맞대결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이 바로 올스타 투표 경쟁이다. 양동근은 드림팀, 김선형은 매직팀의 가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두 사람이 최다득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중이다. 지난 3일 올스타 투표 시작 후 계속 엎치락 뒤치락이다. 처음에는 김선형이 앞서나갔다. 그러자 양동근의 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곧바로 역전이 됐다. 21일 오전 기준으로는 양동근이 3만9568표를 얻고있고, 김선형이 3만9108표를 획득하고 있는 중이다. 불과 460표 차이의 대혈전이다. 2년 연속 올스타 최다득표를 차지한 양동근의 아성을 과연 김선형이 무너뜨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