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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투수 황덕균(35)이 선수 유니폼을 벗는다.
포기는 없었다. 이번에는 넥센에서 재기를 꿈꿨다. 2016~2017년 1군 20경기에 등판했다. 2016년 데뷔 14년 만에 감동의 첫 승을 올렸다. 비록 등판이 불발됐지만, 그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합류하기도 했다. 1군 통산 24경기에서 1승1패, 평균자책점 6.94의 성적을 남겼다. 화려하진 않았으나, 계속된 도전 끝에 1군 무대를 경험했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제 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은퇴를 결심했다. 심정이 어떤가.
-가족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부모님, 장인 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내 가족들이 모두 마음에 걸렸다. 특히, 내가 야구를 하며 버틸 수 있게 해준 아내가 정말 아쉬워했다. 계속 선수로 야구를 하길 원했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하기 정말 힘들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우여곡절 끝에 4개 팀의 유니폼을 입어봤다. 운 좋게 야구를 했다.
-야구 인생에 굴곡이 많았다.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단지 야구를 하고 싶었다. 처음 방출되고 테스트를 안 본 곳이 없다. 모두 떨어지고, 일본에 가서 나를 알리기 위해 독립야구 팀에 입단했다. 사실상 외인 구단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야구를 했다. 내 인생에는 야구 하나 뿐이었다. 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 또, 아내와 맺어준 것도 야구였다.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아내와 프로 입단 후 헤어졌다. 이후 2011년에 계속 테스트에서 떨어졌다. 힘들었을 때, 아내가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NC에 돌아와서 결혼을 했다. 내조를 정말 잘해줬다. 아내에게 고마운 점이 정말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일단 첫 승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작년 8월 18일 롯데 자이언츠전(당시 황덕균은 4-4로 맞선 연장 10회초 등판해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이다. 원래 12회까지 던지기로 했는데, 사실 스스로 내려왔다. 팀이 비기고 있었고, 롯데와 순위 싸움이 한창이었다. 나보다 더 나은 투수가 있었기 때문에, 교체를 택했다. 하지만 팀은 끝내 졌다. 후회가 많이 남는다. 차라리 지더라도 내가 던졌어야 했다. 재미있게 치른 경기였다.
-프로 생활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절실함을 가졌으면, 예전에 더 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프로에 와서 오만한 생각을 했다. 야구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인데, 그 때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게 아쉽다. 나이가 참 아쉽다. 당시 선배들이 해준 말들이 맞았다.
-은퇴 후의 진로는 결정했는 지.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다. 나에게 야구 뿐이다. 야구계에 몸을 담고 싶다. 지도자가 돼서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선수들을 육성하고, 힘들었던 내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 갖지 못했던 절실함이나 인내를 가르쳐주고 싶다. 내가 첫 승을 했을 때, 어린 선수들이 전화로 멋있다는 말도 해줬다. 그런 모습을 보고, 더 단단해졌다. 선수들에게 인정 받았다는 것이 좋았다. 앞으로도 힘들게 야구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희망이 되고,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게 있는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시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후배들 중에 자만심을 가지거나, 금방 포기하려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절실하게 운동을 하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내가 성공한 선수는 아니지만, 계속 도전 하다 보니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서 야구를 했다. 후배들도 계속 도전을 해봐야 한다. 결국 길은 열린다고 말하고 싶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내조를 해준 아내와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못했던 말이 있다. 사실 아버지 덕분에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감사하다는 말씀을 한 번도 못드렸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모든 아버지들은 자식 하나를 보고 고생하신다. 너무 감사드린다.
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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