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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20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종료 직후 해태 투수 선동열이 그라운드로 뛰어나온 포수 장채근을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스포츠조선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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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시절 선동열의 타격 모습. 스포츠조선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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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5일 열린 올스타 전야제. 선동열이 경기료후 장채근과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최문영 기자 de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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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야구 참 편하게 했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투수로 꼽히는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54)의 공을 가장 잘 아는 야구인이 장채근 홍익대 감독(53)이다. 장 감독은 선동열의 송정동초등학교, 해태 타이거즈 1년 후배다. 선 전 감독보다 1년 늦은 1986년 타이거즈에 입단해 1994년까지 배터리로 호흡했다. 전성기 때 선동열 공을 온몸으로 체험한 증인이다.
그 시절 선동열은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는 '최고 중의 최고'였다. 장 감독은 "(오른손 타자)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슬라이더와 아웃코스 직구, 두 가지 구종만 던지면 됐다. 포수인 내가 봐도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이었다. 동열이형이 나오면 경기가 금방 끝나 좋았다. 야구를 참 쉽게 한 것 같다"며 웃었다. 선동열은 통산 68차례 완투했고, 완봉으로 29승을 거뒀다. 당시 시속 140km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도 드물었지만, 선동열의 공은 특별했다.
장 감독은 "스피드도 좋았지만 타자 앞에서 치솟는 느낌을 주는 공 끝이 정말 좋았다. 요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많아졌는데, 예전보다 가볍지 않나. 동열이형 공은 지금으로 치면 시속 160km 쯤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선동열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포수를 믿고 리드에 따랐다. 장 감독은 "인코스 직구를 던져보자는 얘기를 한적이 있는데, '타자가 몸에 맞으면 큰일 난다'며 못 던지겠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공이 위력적이고 위협적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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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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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게 없었기에 자신감이 넘쳤다. 구위가 워낙 좋아 타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공략하기 어려웠다. 장 감독은 "상대팀 타자가 종종 코스를 물어보면 알려주기도 했다.(웃음) 얘기해준대로 공이 들어와도 못 때렸다. 특별히 상대 타자를 분석한 것도 아니다. 좋은 타자가 있으면 '조심 좀 하자' 하는 정도였다. 간혹 홈런을 내줄 때가 있었는데, 우리도 놀랐지만, 타자가 더 놀랐다"고 했다.
선동열은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1시즌 동안 367경기에 등판해 1647이닝을 던졌는데, 피홈런이 28개뿐이다. 59이닝당 1개꼴이다. 김동기(태평양)와 류중일 박승호(이상 삼성) 전대영(빙그레) 2개씩 때려 최다 홈런이다.
장 감독은 딱 한 번 타석에서 선동열을 마주했다.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한 1995년, 선배를 상대해 삼진을 당했다. 볼카운트 1B2S에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장 감독은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이었다"며 웃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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