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1군 147일째, 전천후 백업 류지혁 폭풍성장기

함태수 기자

기사입력 2016-08-25 03:16 | 최종수정 2016-08-25 03:53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두산 니퍼트와 넥센 신재영이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두산 류지혁 유격수가 3회 박동원의 내야 땅볼 타구를 아웃처리하고 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8.14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두산 니퍼트와 넥센 신재영이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두산 류지혁이 4회 넥센 고종욱의 3루방향 파울 타구를 잡기 위해 몸을 날리고 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8.14

"얼마나 분하냐"고 물었다. "잠들 수 없었다"고 했다. "몇 시에 눈을 감았냐"고 물었다. "새벽 5시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때까지 무엇을 했냐"고 물었다. "눈 앞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만 보였다"고 했다.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다음에는 무조건 때려야 한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 했다.

지난달 30일이었다. 두산 베어스 류지혁(22)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전날 잠실 한화 이글스전에서 2번 2루수로 출전, 삼진 4개를 먹었다. 6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4타석은 모두 삼진이었다.

상대 선발은 외국인 투수 파비오 카스티요였다. 1회 체인지업에 헛스윙 삼진, 3회 두 번째 타석 중전 안타, 5회 또 한 번 체인지업에 헛방망이을 했다. 이후 6회 안타 하나를 때린 류지혁. 8회와 연장 10회에는 불펜 투수에게 잇따라 삼진을 당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야구 선수 길로 접어든 뒤 이런 경험은 처음인 듯 했다.

일전에 '국민 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은 "한 경기 삼진 2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3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존심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1개 더 많은 '4K' 경기였다. 류지혁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카스티요의 체인지업 잔상이 날 괴롭혔다"고 했다.

이날 대화는 취재진에게 꽤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다음에는 꼭 카스티요에게 이길 것"이라며 내뿜은 눈빛도 강렬했다. 그는 "코치님들이 자신있게 하라고 독려해주신다. 감독님은 '네가 갖고 있는 스윙만 하려 하지 말고 어떻게든 투수와 싸워야 한다'고 조언해주신다"며 "개막 엔트리 진입은 생각도 못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이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16 프로야구 KIA와 두산의 경기가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3회말 두산 류지혁이 내야 땅볼을 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8.09.
물론 아직까지 타석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하체가 가끔 무너지고 볼카운트 싸움, 노림수도 부족하다. 그토록 벼른 카스티요와의 재회는 지난 17일 청주 원정경기에서 성사됐지만, 이 때도 삼진 2개로 완패했다. 7번 2루수로 선발 출전해 3회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 5회에는 150㎞ 직구에 삼진이었다. 팀 내에서는 "올 캠프 때 몇 가지를 보완해야 한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그는 올 시즌 단 한 번도 2군에 내려가지 않았다. 개막 엔트리부터 이름을 올리더니 팀이 115경기를 치르는 동안 늘 1군 덕아웃에 있었다. 이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 않은 10개 구단 야수 가운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생존력. 역시 남다른 수비 능력 때문이다. 내야는 물론 외야, 포수까지 볼 수 있어 쓰임새가 많다. 김태형 감독도 "수비에서 일단 결단력이 좋다. 잡겠다는 판단을 하면 바로 달려든다"며 "범위도 넓고 송구도 좋다. 주전들의 체력 안배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류지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도루 능력도 있다.

그러면서 류지혁은 2012년 두산에 입단한 이래 처음으로 FA 자격 획득을 위한 첫 시즌을 채웠다. 규정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입단한 신인 선수부터는 정규시즌 1군 등록일수가 145일 이상이면 한 시즌으로 인정하는데, 그는 개막전인 4월1일부터 25일까지 정확히 147일째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이런 시즌을 8번 더 모으면 생애 첫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상황.


물론 까마득한 얘기다. 이제 막 '그 수비를 잘하는 두산 8번 달고 있는 선수'로 이름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새벽 5시까지 잠들 수 없었던 오기와 패기를 앞세워 단 한 차례도 2군에 내려가지 않은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유격수, 2루수, 3루수 등이 모두 프리미어12 국가대표 출신인 두산에서 말이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페이스북트위터]

- Copyrightsⓒ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