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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분하냐"고 물었다. "잠들 수 없었다"고 했다. "몇 시에 눈을 감았냐"고 물었다. "새벽 5시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때까지 무엇을 했냐"고 물었다. "눈 앞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만 보였다"고 했다.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다음에는 무조건 때려야 한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 했다.
일전에 '국민 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은 "한 경기 삼진 2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3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존심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1개 더 많은 '4K' 경기였다. 류지혁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카스티요의 체인지업 잔상이 날 괴롭혔다"고 했다.
이날 대화는 취재진에게 꽤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다음에는 꼭 카스티요에게 이길 것"이라며 내뿜은 눈빛도 강렬했다. 그는 "코치님들이 자신있게 하라고 독려해주신다. 감독님은 '네가 갖고 있는 스윙만 하려 하지 말고 어떻게든 투수와 싸워야 한다'고 조언해주신다"며 "개막 엔트리 진입은 생각도 못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이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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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는 올 시즌 단 한 번도 2군에 내려가지 않았다. 개막 엔트리부터 이름을 올리더니 팀이 115경기를 치르는 동안 늘 1군 덕아웃에 있었다. 이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 않은 10개 구단 야수 가운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생존력. 역시 남다른 수비 능력 때문이다. 내야는 물론 외야, 포수까지 볼 수 있어 쓰임새가 많다. 김태형 감독도 "수비에서 일단 결단력이 좋다. 잡겠다는 판단을 하면 바로 달려든다"며 "범위도 넓고 송구도 좋다. 주전들의 체력 안배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류지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도루 능력도 있다.
그러면서 류지혁은 2012년 두산에 입단한 이래 처음으로 FA 자격 획득을 위한 첫 시즌을 채웠다. 규정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입단한 신인 선수부터는 정규시즌 1군 등록일수가 145일 이상이면 한 시즌으로 인정하는데, 그는 개막전인 4월1일부터 25일까지 정확히 147일째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이런 시즌을 8번 더 모으면 생애 첫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상황.
물론 까마득한 얘기다. 이제 막 '그 수비를 잘하는 두산 8번 달고 있는 선수'로 이름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새벽 5시까지 잠들 수 없었던 오기와 패기를 앞세워 단 한 차례도 2군에 내려가지 않은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유격수, 2루수, 3루수 등이 모두 프리미어12 국가대표 출신인 두산에서 말이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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