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초이' 최희섭(37).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라운드보다 산을 더 좋아했던 야구선수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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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이다. 사실 이미 국내에는 수많은 메이저리그 전문해설위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독보적인 장점이 최희섭에겐 있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포지션 플레이어로서 미국 무대를 호령했던 생생한 경험을 지녔다. 그야말로 코리안 메이저리거 1세대로서 살아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빅리그 2년차에 접어들던 2003년 커다란 위기를 맞는다. 당시 최희섭은 본격적인 주전으로서 도약하던 시기였다. 2003년 4월에 내셔널리그 '이 달의 신인'으로 선정되며 발군의 기량을 뽐내던 최희섭은 6월9일 뉴욕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경기 도중 내야 뜬공을 잡으려다가 당시 컵스 선발 케리 우드와 충돌하면서 뒤통수를 땅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무려 6시간 뒤에 깨어날 정도로 충격이 컸다. 당시의 뇌진탕 후유증은 결국 최희섭의 빅리그 경력에 치명상을 남기고 만다. 최희섭은 당시를 회상하며 "선수 생활 자체가 끝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후 12년이나 야구를 더 했던 게 감사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후 최희섭은 플로리다 말린스와 LA다저스를 거치며 점점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뇌진탕 후유증으로 호쾌한 스윙이 작아졌고, 아시아계 선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작용하면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LA다저스 시절이던 2005년 6월13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기량 회복세를 보였으나 결국 탬파베이 레이스를 마지막으로 빅리그 생활을 청산한 뒤 2007년 5월 KIA 타이거즈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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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메이저리그 해설의 꿈
최희섭은 국내 무대로 돌아온 뒤 영광과 좌절을 번갈아 경험했다. 가장 찬란했던 영광의 시기는 2009시즌. 타율 3할8리에 3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특급 거포의 기준인 '타율 3할-30홈런-100타점'을 동시에 달성했다. 더불어 이해 KIA 타이거즈의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잦은 부상과 구단과의 의견 충돌 등으로 부침을 겪었다. 강한 의지로 재기를 다짐했지만, 몸상태가 발목을 잡은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산에 올라 마음을 추스르기도 했지만, 기량 회복이 쉽지 않았다. 여전히 압도적인 힘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허리 통증으로 타구에 온전히 힘을 싣기 어렵게 됐다.
결국 최희섭은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곧바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준비했다. 구단과 협의해 올해 초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코치연수를 받았다. 김현수가 있는 볼티모어 구단과 박병호의 미네소타 구단 등을 돌며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드디어 해설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최희섭은 이번주부터 한 스포츠케이블 방송사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를 맡게 된다. 최근 그의 해설가 데뷔 홍보 영상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최희섭은 "지난해 은퇴 발표 후에 해설가 제안이 있긴 했다. 하지만 연수가 우선순위였다. 연수 중에 해설 제의를 받았는데, 마침 5월에 은퇴식이 예정돼 있어서 시기를 맞췄다"며 해설가 데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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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희섭만큼 메이저리그 인맥이 두터운 인물도 드물다. 현재 김현수의 소속팀인 볼티모어의 호세 에르난데스 수비 및 작전코치나 윌슨 알바레즈 투수코치는 최희섭과 각각 시카고 컵스, LA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들이다. 최희섭은 "현장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솔직하게 전달하도록 할 생각이다. 사실 내가 언변이 화려한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대신에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있고 솔직담백하게 해설을 하고 싶다. 야구팬 여러분께 꾸밈없이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면서 재미도 함께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직한 산을 닮은 사나이. 최희섭의 진솔하고 생생한 메이저리그 해설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