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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가 내려갔을 때 속이 시원했지. 허허"
19일 한국은 기적같은 승리를 연출했다. 일본 야구의 심장부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 12 4강전에서 9회까지 0-3으로 끌려가다가, 9회 대거 4득점, 4대3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9회 4만 여명이 모인 도쿄돔은 침묵에 휩싸였다. 간헐적인 한국 응원단의 환호성도 있었지만, 삽시간 조용해진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한마디로 충격과 공포였다.
역사에 길이 남을 도쿄대첩을 진두지휘한 김인식 감독. 20일 한국대표팀의 연습 때 김 감독은 변함없이 덕아웃을 지켰다.
그는 "오타니의 공은 공략하기 너무 힘들어 보였다. 대표팀에서 가장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는 김현수도 공을 맞추지 못했다"며 "오타니가 내려갔을 때 속이 다 시원했다. 역전까지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실마리는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감독이 승리를 확신했을 때는 언제였을까. 그는 "정근우의 좌선상 2루타 때 1점을 뽑은 뒤에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수가 볼넷으로 밀어내기 득점을 올리면서 1점차로 따라갔을 때, '뒤집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 감독의 확신은 현실이 됐다. 이대호가 좌전 2타점 적시타로 경기를 순식간에 뒤집어 버렸다.
그는 "3시간 동안 완전히 지고 있다가 5분 만에 역전을 시켜버렸다. 국제대회에서 이런 경기도 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위기에 몰렸을 때 일본의 외야는 전진수비를 하고 있었다. 9회말 공격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김 감독은 "9회말이 있기 때문에 동점을 허용하더라도 주도권을 쥐고 갈 수 있다. 때문에 당시 전진수비는 매우 위험했다. 아마 도쿄돔이 인조잔디여서 타구가 빠르게 구르니까. 2루 주자를 홈에서 아웃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나 같았으면 안정적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9회말 공격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대타작전은 신기에 가까웠다. 두 차례 대타가 모두 성공했다. 9회 선두타자 오재원과 손아섭이 모두 안타, 무사 1, 2루의 역전 발판을 마련했다.
김 감독은 19일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오재원을 앞에 쓰고, 손아섭을 뒤에 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이날 김 감독은 "오재원의 경우 선두타자로서의 목적성이 확실히 있는 선수다. 발이 빠르고 대담하기 때문에 선두타자로 나섰을 때 효과가 있다. 반면 손아섭은 타격 능력이 좋다. 때문에 찬스에서 찬스를 이어주는 역할에 적격이다. 이 때문에 오재원을 먼저 대타로 내고 손아섭을 그 뒤에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선수들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확실히 일본이 강하긴 하다. 9회 박병호의 직선타와 오재원의 타구는 안타성이었다. 그런데 일본 수비수들에게 모두 걸렸다. 특히, 오재원의 타구는 완전히 빠지는 줄 알았다. 일본 중견수(아키야마)가 약간 좌측에서 수비를 시작했는데, 따라와서 끝내 잡아내더라. 확실히 수준이 높긴 하다"고 칭찬했다.
이날 심판진의 스트라이크존은 매우 좁았다. 특히 타자 바깥쪽은 매우 인색했다. 김 감독은 "포수 양의지에게 일단 홈런이 많이 나오는 도쿄돔의 특성상 낮게 던지게끔 유도하라고 계속 지시했다. 그리고 바깥쪽 공에 대해서는 벤치에서 나도 소리를 지르고 했다. 그러자 주심이 신경이 쓰이는 지 벤치 쪽을 지켜보더라. 양의지는 '몇 개 빠진 공도 있었는데, 스트라이크가 볼로 판정되는 공도 있었다'고 하더라. 4회 나카타 쇼에게 내준 볼넷의 마지막 공은 스트라이크였던 것 같았는데"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실 대표팀 구성에 고민이 많았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투수들은 올 시즌 자신감을 얻고 잘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묵묵히 책임진 노장 사령탑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도쿄돔=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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