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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민병헌 스틸? 좌절된 절묘한 승부수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5-09-20 06:32


민병헌의 모습.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20/

당연한 얘기지만, 야구는 흐름에 매우 민감하다.

예를 들어 A팀이 득점으로 리드를 잡거나, 역전에 성공한 경우. 이어지는 수비에서 A팀 투수가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어렵게 가져온 흐름을 사실상 헌납하는 경우다. 실점으로 연결되면 더욱 그렇다.

몇 가지 기본적인 기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역전에 성공한 뒤 추가점을 얻으면 분위기는 더욱 유리해진다는 사실. 흔히 사령탑들이 3~4점 점수 차라도 "도저히 역전하기 힘든 흐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리드를 잡거나 역전에 성공한 뒤 차곡차곡 고비마다 추가점이 터진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다.

18일 두산이 4대10으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대구 삼성과 두산의 경기. 4-3으로 리드를 잡은 두산은 8회초 선두타자 민병헌이 중전안타를 치고 출루했다. 당연히 흐름 상 추가점이 절실했다.

올 시즌 유독 삼성에게 8회 뼈아픈 역전을 허용, 패배를 당한 경험이 많은 두산. NC와 치열한 선두경쟁 중인 삼성 류중일 감독은 1점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필승계투조 안지만을 투입했다. 역전을 충분히 노릴 수 있다는 계산.

두산 김태형 감독도 당연히 이런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 점에서 8회 두산의 추가점은 더욱 필요했다.

그런데 민병헌이 도루를 하다가 포수 이지영의 강한 송구에 아웃됐다. 허무하게 추가점 기회를 날렸다. 결국 8회말 두산의 마운드는 무너졌다. 대거 7점을 내주고 역전패를 당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무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산 벤치의 추가점 확률을 높이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실패한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

타석에 들어선 김현수는 매우 공격적인 타자다. 컨택트 능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민병헌에게 스틸 사인이 났다. 볼카운트는 3B 1S였다.

각각의 경우를 살펴보자. 패스트볼이나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할 경우 김현수의 방망이가 적극적으로 나올 공산이 컸다. 패스트볼이나 슬라이더의 경우 같은 타이밍에서 배트가 나온다. 낙차 큰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면 빠른 발을 지닌 민병헌의 경우 2루에서 세이프가 될 확률이 높았다. 볼이 들어갈 경우 자동적으로 볼넷이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추가점을 내기 위한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갖다놓으면서도 병살타를 방지할 수 있는 확률은 '런 앤 히트'가 가장 높았다.

두산 벤치는 김현수에게 사인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편안하게 두는 게 타격에서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안지만의 142㎞ 패스트볼이 김현수의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걸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선언이 됐고, 김현수의 방망이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민병헌은 뛰었고, 아웃됐다. 김현수는 이 공을 놓친 뒤 너무나 아쉬워했다.

19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민병헌은 "스틸 사인이 났다"고 했다. 옆에 있던 김현수에게 "왜 안 쳤어"라고 하자, 김현수는 "내 잘못이죠 뭐"라고 했다. 무표정하게 '쿨'하게 답했지만,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김현수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꼬였다는 판단이 합리적이다. 안지만의 패스트볼이 절묘하게 바깥으로 형성됐고, 볼과 스트라이크의 순간적인 판단에 혼돈스러웠던 배트가 충분히 멈춰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만 따져보면 두산 벤치는 가장 적합한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모든 게 의도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리한 스틸로 인한 추가점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수많은 변수를 고려한 '승부수'가 어쩔 수 없이 좌절된 경우라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 부분을 놓고 두산 김태형 감독은 "꼬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어쨌든 감독인 내 책임"이라고 했다. 대전=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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