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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로저스의 다른 매력, '팀캐미스트리'를 살렸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08-12 08:35


'에이스'이자 '응원단장'이자 '격려대장'이다.

한화 이글스가 힘겹게 거액을 지불하면서까지 데려온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30)는 '진짜배기'였다. 한국 무대를 밟자마자 KBO리그를 평정해나가고 있다.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9회까지 혼자 버텨냈다. 데뷔전(6일 대전 LG전) 9이닝 1실점 완투승에 이어 두 번째 등판이었던 11일 수원 kt전에서는 9이닝 완봉승까지. 리그 데뷔 2경기 연속 완투의 위업. KBO리그 34년 역사상 이런 기록을 세운 투수는 없었다. 로저스는 KBO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kt와 한화의 2015 KBO 리그 경기가 11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6회말 1사 1,2루 한화 로저스가 kt 마르테를 병살로 처리한 후 기쁨을 나누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11/
엄청난 구위와 여유있는 경기 운영능력, 게다가 불펜의 힘으로 어렵게 버텨가던 한화에 절실했던 '이닝이팅 능력'까지 보여준 덕분에 로저스는 불과 2경기만 치르고도 단숨에 '에이스'의 자격을 얻었다. 분명 로저스의 가세는 한화의 팀 전력에 커다란 플러스 요인이다. 더불어 포스트시즌행 티켓을 따내는 데 큰 추진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로저스의 진가는 '에이스급 피칭'외에도 다른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팀 전력 상승에 한몫 하고 있는 로저스의 또 다른 가치. 그것은 바로 순식간에 '팀 이글스'의 중심에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수 년간 한화 이글스에서 동고동락했던 사이처럼 동료들과 어울린다.

단순히 구김살없이 인사를 하고, 장난을 주고받는 차원이 아니다. 함께 힘을 모아 적과 싸우는 '동지애'를 느끼게 만든다. 자신이 경기에 나서지 않을 때는 덕아웃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보여주며 '응원단장'이 됐다가, 자신이 나선 경기에서는 호수비를 펼친 야수들에게 진심이 우러나오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격려대장'으로 변신한다. 그 덕분에 로저스가 나서는 경기에서는 '팀 캐미스트리'가 자연스럽게 치솟는다.

이런 로저스의 또 다른 매력은 첫 등판때부터 나왔다. 경기 초반 멋진 다이빙캐치로 대량 실점의 위기를 막아낸 유격수 강경학에게 연신 박수를 보내더니 이닝 교체 때는 강경학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다른 야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더니 8일 대전 롯데전때는 덕아웃 한쪽에서 한화 특유의 응원문화인 '육성응원' 동작을 따라하기도 했다. 동료들이 롯데를 상대로 펼치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안타까워하며 응원을 쉬지 않았다.


kt와 한화의 2015 KBO 리그 경기가 11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5회말 수비를 무실점으로 마친 한화 로저스가 포수 조인성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짓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11/
11일에도 그런 모습은 똑같이 나왔다. 이날 로저스는 경기가 열리기 2시간쯤 전에 반바지 차림으로 덕아웃에 나와 음악을 들으며 선발 등판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조인성, 정현석, 송주호, 주현상 등 타격 연습을 하던 동료들 지나갈 때는 주먹을 마주치며 환한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선발 등판을 앞둔 투수들은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 동료들이 알아서 피해주는 경우가 많다. 해당 투수들도 보통은 라커룸에 혼자 앉아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경기 준비를 한다. 그런데 로저스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유롭게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의 기분을 끌어올리는 듯 했다.

경기 중에는 야수진의 호수비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시했다. 호수비가 나오는 순간마다 해당 야수와 눈을 맞추며 박수를 보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가끔씩은 이닝 교체 때 먼저 덕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야수들이 들어올때까지 기다렸다가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한다. 11일 kt전에도 그랬다. 5회말 2사후 우익수 정현석이 박기혁의 안타성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 잡아내자 로저스는 어깨를 들썩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미소를 지은 채 덕아웃으로 3루 파울라인 부근에 멈춰섰다. 외야에 있던 정현석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정현석이 다가오자 로저스는 손을 내밀었다. 진심을 담아 호수비를 펼친 정현석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kt와 한화의 2015 KBO 리그 경기가 11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5회말 2사 한화 로저스가 kt 박기혁의 타구를 멋진 수비로 잡아낸 우익수 정현석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11/

이러한 로저스의 모습은 한화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워낙에 타자와의 승부가 빨라 야수진의 집중력 유지에도 도움이 되고 있지만, 매 순간 고마움과 파이팅을 동료들에게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선수들을 하나로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 결과적으로 로저스가 그라운드의 중심에 서서 동료들을 하나로 묶는 아교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팀 캐미스트리'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는 점. 로저스의 또 다른 위력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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