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엽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 안한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7-23 11:28 | 최종수정 2015-07-23 11:29


3일 오후 포항야구장에서 2015 프로야구 롯데와 삼성의 경기가 열렸다. 3회말 2사서 삼성 이승엽이 통산 400홈런을 친 후 3루를 돌고 있다. 포항=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39)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국민타자' 하나로 충분하다.

한국야구의 자부심이고, 자랑이었던 이승엽은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는 올해 두 차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 6월 3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 3회말 우월 1점 홈런을 때려 KBO리그 사상 처음으로 400홈런 고지를 밟았다. 또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최다득표를 기록했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의 축복이다.

기록에 초연한 단계에 이르렀지만, 또 하나의 기록이 기다리고 있다. 한일통산 2500안타가 눈앞에 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8시즌 동안 686안타, 22일까지 KBO리그에서 1809안타를 때려 2495안타. 한일통산 2500안타에 5개를 남겨놓고 있다. 물론, 사상 첫 기록이다.

22일 대구구장 3루측 덕아웃에서 만난 이승엽은 "더이상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 안한다.

1976년 생 39세. 불혹이 코앞인데 이승엽은 물리적인 시간을 거부한다. 나이를 거론하는 게 어색할 정도로 쌩생하다. 22일 현재 타율 3할2푼7리- 15홈런-59타점. 홈런은 야미이코 나바로, 최형우에 이어 팀내 3위, 타점은 4위다.

올해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승엽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100점 만점에 60점. 평가 기준이 엄격한 것 같다. 그는 올해는 지난해만큼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했다. 남은 시즌에 계속해서 점수를 높여갈 수는 있다.


이승엽이 꼽은 최고의 시즌은 2014년이다. 50개가 넘는 홈런을 펑펑 때린 시즌이 아니었다. 이승엽은 "악몽같았던 2013년에는 은퇴를 생각해야할 시기가 왔나 싶었다. 그런데 지난해 다시 희열을 느끼며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12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삼성으로 복귀한 이승엽은 2013년 타율 2할5푼3리-13홈런-69타점을 기록했다. 역대 최악의 시즌이었다.


3일 오후 포항야구장에서 2015 프로야구 롯데와 삼성의 경기가 열렸다. 3회말 2사서 통산 400호 홈런을 친 이승엽이 이닝 종료 후 행사에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포항=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6.03.
이승엽은 지금 선수인생을 9회 기준으로 '8회초'라고 했다. 이승엽은 "올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연장 10회초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야구는 시간 제한이 없다.

야구인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겠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고개를 가로젓는다. 성공을 위해 감내했던 혹독한 시간. 다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승엽까지 야구를 안 하겠다고 한다.

"야구를 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겪는 일을 못 해봤다. 야구를 통해 얻은 게 정말 많지만 다른 걸 해보고 싶다."

그래도 다시 야구를 해야한다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마운드에 우뚝 서 경기를 이끌어가는 투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투수로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부상 때문에 투수를 포기하고 타자로 전향했다.

2005년 생 큰아들 은혁이가 리틀야구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 이승엽은 취미생활 정도로 선을 긋고 싶어했다. 체격이 좋고 재능도 있다. 그래도 야구를 통해 단체생할을 경험하고, 규율을 익히는 정도면 된다고 했다.

이승엽은 "아들이 야구선수를 하겠다고 하면 말릴 생각이다. 야구선수로 성공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연차가 쌓이면 책임감도 커진다.

1995년 삼성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 21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연차가 쌓이면서 책임감이 커진 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이승엽은 "후배들 앞에서 나태한 모습, 흐트러진 모습,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고참이 되면서 더 조심을 하게 된다"며 "예전에는 내가 해야할 일에만 집중하면 됐는데, 요즘에는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모범생' 이승엽은 요즘
2015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18일 수원 KT위즈 파크에서 열렸다. 최다득표를 기록한 삼성 이승엽이 입장하는 모습. 수원=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조금 더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이승엽처럼 거부감없이 온국민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도 잘 알고 있다. 팬들이 새 얼굴을 원할 수도 있고, 언젠가 떠나야한다는걸. 후배들에게 길을 터 줘야한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도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밀려나듯 물러날 생각은 없다.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모든 걸 평가를 받는 직업, 그게 프로다.

올해가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2~3년 재계약이 유력하다. 이승엽은 "계약이 끝나는 해가 마지막 시즌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야구가 그를 쉽게 놔줄 것 같지 않다.

'5년 후 이승엽'을 묻자 그는 "지도자 혹은 다른 모습으로 있겠지만 야구와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일은 생각 안 해봤다"고 했다. 은퇴 이후를 고민할 시기는 아니지만 방송해설도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승엽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6년 말에 대구구장 그라운드를 처음 밟았다. 대구구장 곳곳에 수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다. 올해가 대구구장 마지막 시즌인데, 아쉽기도 하지만 빨리 새 구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개장한지 60년이 넘은 대구구장 시설이 너무 낙후돼 있다. 이승엽은 대구구장 마지막 시즌에 다시 한번 우승을 하고, 새구장에서 산뜻하게 출발하고 싶다고 했다.

마쓰자카 상대 첫 안타공 갖고 있다.

수많은 기록의 주인공인데 정작 이승엽이 갖고 있는 기념공은 거의 없다.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면 주인은 따로 있다.

기록의 의미가 담긴 공은 두개 정도 보유하고 있다.


이승엽이 2004년 3월 27일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아 세이부돔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즈전 1회 마쓰자카를 상대로 2루타를 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2년 5월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이승엽은 6회 우전 안타를 터트렸다. 한일 통산 2000번째 안타였다. 안타를 때리고도 이승엽은 통산 2000안타라는 걸 몰랐다. 구단도 따로 얘기를 해준 게 없었고, 전광판에 축하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안타가 된 공을 상대팀 야수가 투수에게 전달했고,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다. 다음 타자가 친 공이 마침 포수 뒤쪽으로 파울이 됐다. 이때 심판실에 있던 문승훈 대기심이 그라운드로 나와 이 공을 챙겼다고 한다.

이승엽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신경을 써주셔서 고마웠다"며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문승훈 심판원은 "보통 기록이 예정돼 있으면 고지를 해주는데, 그날은 얘기가 없었다. 심판실에서 TV 중계를 보다가 대기록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당일에는 못 만나고 다음날 공을 전해줬다"고 했다.

나머지 한개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때린 1호 안타공이다. 2004년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한 이승엽은 그해 3월 27일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세이부돔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즈전 1회 첫 타석에서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오른쪽 펜스를 원바운드로 때리는 2루타를 쳤다.

이승엽은 "분명히 집에 있을텐데, 어디에 있는 지는 확실히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구=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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