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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식 화법 "대기표 잃어버리면 다시 줄을 서야한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6-10 09:02


6월 2일 잠실구장에서 KBO리그 두산과 KIA의 경기가 열렸다. KIA가 두산에 9대1 승리를 거두며 2연패에서 탈출했다. 경기 종료 후 김기태 감독이 서재응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6.02

KIA 타이거즈 선수들에게 김기태 감독이 부임한 후 달라진 점을 물으면 대다수가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말한다. 베테랑 선수에서 저연차 젊은 선수까지 이구동성으로 "자신감을 갖고 편하게, 재미있게 야구를 해보자는 감독님 말씀이 힘이 된다"는 얘기를 한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최근 몇 년 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최희섭(36) 서재응(38)이 명예 회복의 기회를 갖게 됐다. 최근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진 최희섭은 "여러가지 배려를 해주신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했다. 선발 등판한 서재응을 내릴 때 김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가 어깨를 다독여 줬는데 "고참에 대한 예우였다"고 했다. 팀 내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입지가 좁아졌던 김원섭(37) 김민우(36)도 인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김원섭은 "안 그러셔도 되는데, 선발에서 빠질 때 감독님이 미안해 하신다"고 했다. 에이스인 양현종(27)은 "감독님이 자부심을 심어주셨다"고 했다.

감독의 신뢰와 배려가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불만도 있고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선수도 있겠으나 김 감독의 존재감 자체가 대다수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는 듯 하다. 경기 전 훈련 때 김 감독의 동선을 따라가다보면, 그가 얼마나 활발하게 소통을 하는 지 알 게 된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 끊임없이 움직여 선수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울린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특정 선수를 편애하는 것 같지는 않다. KIA는 올시즌 팀 성적을 쫓으면서 리빌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 선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만, KBO리그 다른 어느 팀보다 여러 선수에게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 외야수 김호령(23) 등 신인급 선수, 포수 이홍구(25) 등 저연차 선수, 내야수 최용규(30) 등 지난해까지 1군에서 보기 어려웠던 선수까지 골고루 엔트리에 포진해 있다. 투수 임준혁(31)을 비롯해 문경찬(23) 홍건희(23) 한승혁(22) 등도 착실하게 팀에 기여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KIA와 삼성의 2015 KBO 리그 주말 3연전 두번째 경기가 23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렸다. KIA가 8회말 터진 필의 결승타로 1대0 승리를 거뒀다. 경기가 끝난 후 승리투수가 된 양현종이 김기태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광주=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5.23/
사실 KIA의 리빌딩 작업은 전략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이 닥친 과제다. 세대교체가 분명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현재 KIA를 보면 시험이 닥쳐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밸런스를 신경쓰고 조화를 이뤄가면서 추진하는 모습이다. 1,2군을 오가는 선수가 많고 다양한 형태로 출전 기회가 주어지다보니 정체될 틈이 없어 보인다.

새 감독 체제에서 어느 때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해도 선수 기용에 있어 분명한 기준이 있다. 김 감독은 그동안 여러차례 열심히 준비한 선수, 절실하게 야구에 매달리는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주겠다고 강조했다.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표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다시 대기표를 뽑아서 뒤로 가 줄을 서야 한다."

최근 1군에 합류한 김진우의 보직 얘기가 나왔을 때 한 말이다. FA(자유계약선수)를 앞두고 있는 김진우는 2군 전지훈련 때 다쳐 2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았다. 개막 후 두달이 넘어 1군에 합류했다. 중간계투로 던지다가 선발 로테이션 진입이 예상되는데, 김 감독은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김 감독은 "부상을 당하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데, 부상없이 몸 관리를 하는 것도 실력이다. 마무리 훈련부터 시작해 스프링캠프 기간에 열심히 한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잘 안 된다고 해도 견디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김진우만 콕 찍어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 이면에 냉철한 눈이 자리하고 있다. 이게 프로다.

광주=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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