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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 구단의 에이스들은 대부분 등번호 18번이 찍힌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른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도 18번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전통가극 가부키에서 18가지 재미있는 풍자소극을 정리한 게 있는데, 여기서 유래한 18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애창곡으로 불리는 '18번'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미우리의 전설적인 투수 사와무라 에이지가 18번을 사용했는데, 오랫동안 각 팀의 최고 투수가 18번을 사용하면서 이 번호가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를 잡았다.
18번보다 특정 번호에 애착을 갖고 있는 에이스급 투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무리 우에하라 고지. 1998년 드래프트 1순위로 요미우리에 입단해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우에하라는 요미우리는 물론, 볼티모어 오리올스,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에서도 18번이 아닌 19번을 달았다. 체육교사가 꿈이었던 우에하라는 대학입학에 실패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가며 1년 간 재수생활을 했다고 한다. 사실 고교 때까지만 해도 우에하라는 무명이이었다. 도카이대학부속보세이고등학교 시절 우에하라는 다테야마 요시노리(한신 타이거즈)에 밀려 등판 기회가 별로 없었고, 소속 팀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우에하라는 암울했던 재수생 시절, 19세에 겪었던 충격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요미우리에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할 때 19번을 골랐다고 한다. 재수를 거쳐 대학에 입학한 우에하라는 요미우리와 메이저리그 구단이 영입 경쟁을 할 정도로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유는 11번에 애착이 크다. 니혼햄 파이터스 입단 때부터 11번을 썼는데, 구단에서 후일 18번을 제안했지만 11번이 익숙하다면서 고사했다. 2011년 레인저스 입단 후에도 여전히 11번을 달고 있다. 잠시 18번을 단 적은 있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일본 대표팀의 에이스로 18번을 달고 마운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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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 라이온즈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18번을 쓴 마쓰자카 다이스케. 그는 보스턴과 계약이 끝나고 2013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옮겼을 때 18번을 대신 20번을 써야 했다. 클리블랜드의 전설적인 투수 멜 히더의 등번호 18번이 영구결번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스의 등번호 18번는 선수 영입 때도 자주 등장한다. 최근 오승환의 소속팀 한신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FA를 선언한 좌완투수 나루세 요시히사에 3년 계약에 등번호 18번을 제시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에이스를 대접하겠다는 의미다.
소프트뱅크도 일본 복귀로 마음을 굳힌 마쓰자카에게 계약기간 3년 이상에 총액 20억엔과 함께 등번호 18번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프트뱅크행이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 마쓰자카에게 요코하마 DeNA가 3년-10억5000만엔 조건을 내밀었다. 요코하마는 마쓰자카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부터 관심을 보여온 팀이다. 요코하마는 요코하마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쓰자카와의 인연을 강조한다. 요코하마 구단은 마쓰자카를 위해 등번호 1번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가 요코하마고 시절 고시엔대회를 뒤흔들고 '괴물투수'로 불릴 때 사용한 등번호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