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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타임 2년차 선수치곤 성장세가 가파르다. 하지만 그의 전반기를 되돌아보면, 십분 이해가 간다.
리드오프에겐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이 있다. 출루가 우선이다. 출루 이후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로 중심타선에 밥상을 차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많은 공을 봐야 한다. 공을 많이 기다리면 볼넷을 얻어낼 수도 있고, 상대의 투구수를 늘릴 수도 있다. 좋은 '선구안'이 1번타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여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병헌에겐 생소한 부분이었다. 좋은 공이 오면, 지체 없이 타격하는 스타일이다. 공격적인 자신의 장점과 상충되는 부분이었다. 그는 "처음엔 볼도 많이 보려 했다. 1번타자에게 요구되는 걸 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록 결과가 좋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 스타일대로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4월 중순부터 타격감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민병헌은 5월 들어 '미친 타격감'을 보였다. 5월 월간 타율이 무려 4할. 5월 5일 잠실 LG 트윈스전부터 시작된 연속안타 행진은 6월 6일 목동 넥센히어로즈전까지 24경기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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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런 경우 선수가 가장 답답하다. 조급해서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기도 한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슬럼프가 된다. 의외로 슬럼프가 오는 건 순식간이다.
민병헌은 이 고비를 잘 넘겼다. 하락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그렇게 잘 치는 (이)재원이도 4할을 유지하지 못하고 내려오지 않나. 타격은 그런 것이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다. 언제까지 좋을 수는 없다"며 "부진이 왔어도 다시 올라갈 때가 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하던대로만 했다"고 했다.
풀타임 2년차답지 않은 의연함이었다. 침착하게 슬럼프에 대처했다. 언젠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평소처럼 훈련했다. 타격감이 떨어질 때, 다른 선수들이 하는 타격폼의 변화나 훈련방식과 강도의 변화 등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그동안 해온 방식을 고수했다.
민병헌의 타격감은 전반기 막판 다시 올라왔다. 그의 말대로 된 것이다. 7월 타율 3할8푼을 기록하며 전반기 성적을 다시 한층 끌어올렸다. 1번타자를 맡으면서 처음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할 때나, 부진에 빠졌을 때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사실 정답은 간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타격 사이클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순리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지난해 처음 풀타임 주전으로 뛰면서 3할 타자(3할1푼9리)가 된 민병헌은 그 정답을 빨리 알았다. 순리대로 한 시즌을 마쳤을 때, 그의 위치는 어디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