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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야구계에선 '대형 신인'이 사라졌다는 말을 했다. 프로 입단 후 1군에 자리 잡으려면 수년이 걸린다고 했다. 과거처럼 아마추어 때부터 주목을 받은 몇몇 신인이 입단 첫 해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들 이후 프로 입단 첫 해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투수는 사라졌다. 2006년 류현진을 끝으로 선발투수 신인왕도 사라졌다. 2007년 두산 임태훈이 입단 첫 해 신인왕을, 2009년 두산 이용찬이 세이브 공동 1위로 입단 3년만에 신인왕을 차지했지만, 모두 구원투수였다.
신인이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기 힘든 여건도 있었다. 모든 구단이 외국인선수를 투수로 뽑으면서 토종 선발의 자리는 줄었고, 자연스레 기존 선수들 외에 새 얼굴의 진입이 힘들어졌다.
'명품 체인지업' 이재학, 새로운 기회를 잡다
2010년 두산에 1라운드 전체 10순위로 지명된 이재학은 입단 첫 해부터 기대를 모아 1군 무대를 경험했다. 사이드암 특유의 볼끝이 지저분한 장점을 활용해 중간계투로 쓸모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역시 프로의 벽은 높았다. 1군 16경기(1경기 선발)에 등판해 1승1패 평균자책점 5.01을 기록했다. 23⅓이닝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고, 1승 역시 구원승이었다.
이듬해 팔꿈치가 탈이 나고 말았다. 첫 해 1군 경험을 바탕으로 의욕적으로 전지훈련에 임했지만, 팔꿈치 통증으로 이탈했고 연골이 깨져 시즌 내내 재활에 매달렸다. 결국 시즌 뒤 보호선수 40인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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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토종 선발로 기대를 모았지만, 시범경기부터 좀처럼 밸런스를 잡지 못해 고전했다. 하지만 첫 등판이었던 4월 11일 잠실 LG전에서 6이닝 무실점하며 팀의 창단 첫 승리투수가 됐다. 이어 첫 완투와 첫 완봉승 모두 이재학의 손에서 나왔다. 당당한 NC의 '토종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40㎞ 정도의 직구는 구속에 비해 위력이 있고, 똑같은 폼에서 나오는 서클체인지업은 리그 최정상급이다. 피안타율 전체 2위(2할3푼1리)의 압도적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학은 신인왕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부진했다고.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매 경기 하던대로 집중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5일 현재 8승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중이다. 10승 고지가 눈앞이다.
'느림의 미학' 유희관, 편견을 깨트리다
두산 유희관은 이재학의 1년 선배다. 대졸 신인으로 고졸인 이재학에 비해 나이도 많다. 2009년 2차 6라운드 전체 42순위로 프로에 입단했다. 직구 구속이 130㎞대에 불과해 하위 라운드에 지명됐다. 이재학에 비하면 입단 때부터 주목을 받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왼손투수의 이점을 살려 2009년과 2010년 모두 1군을 경험했다. 하지만 21경기서 승패나 홀드 등 아무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2년간 16⅔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이후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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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제구가 나쁜 투수가 아니었다. '팔색조'에 가까운 다양한 변화구로 위기관리능력도 갖췄다. 하지만 130㎞대 중반에 그치는 최고구속 탓에 많은 이들의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1군 진입 자체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유희관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간계투로 시즌을 시작해 안정감 넘치는 피칭을 선보였다. 팀의 선발로테이션이 붕괴돼 임시선발 기회를 잡은 5월 4일 잠실 LG전서 5⅔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5월 말부터는 아예 붙박이 선발로 자리를 잡았다.
'느려서 안된다'는 편견은 '느림의 미학'으로 바뀌었다. 경기를 치를수록 '느리다'는 독특한 장점이 사라져 고전할 것이란 편견도 깨트리며 선전중이다. 이재학과 선발로테이션도 비슷하다. 지난 1일 나란히 승리를 올려 8승4패 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중이다. 이재학보다 평균자책점에선 앞서 이 부문 4위에 올라있다.
이외에 다른 경쟁자도 있지만, '신인 선발투수'에 대한 임팩트가 더욱 크다. 그만큼 한국프로야구는 새로운 선발투수 발굴을 기다렸다.
둘은 지난달 21일 맞대결을 펼쳤다. 6⅓이닝 3실점(2자책)한 이재학이 7⅓이닝 6실점한 유희관에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남은 시즌 누가 더 좋은 성적을 남기느냐가 신인왕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7년만에 두자릿수 승수를 올린 '선발투수 신인왕'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