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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선수들은 '아우라'가 있다. 삼성 이승엽 같은 경우 중요한 순간 한방을 쳐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실제로 이승엽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잊혀지지 않을 홈런을 터트렸다. 지난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첫 경기에서 홈런을 터트리면서 기선 제압을 했다.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도 마찬가지다. 그가 등판하면 '이제 경기가 삼성 승리로 끝나겠구나'하는 뻔한 결말이 연상된다. 과거 해태 시절의 국보급 투수 선동열(현 KIA 감독)도 비슷한 경우다. 그가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 타자들은 '오늘 경기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정대현은 지난달 구위가 시원치 않아서 1군에서 제외됐다. 이번에 올라온 건 구위가 많이 좋아졌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정대현은 불펜과 실전 피칭으로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다. 롯데 구단은 "정대현의 구위가 지난해 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롯데 이적 후 첫 해였던 2012년 정대현은 시즌 중후반부터 나와 24경기에서 28⅓이닝을 던져 2승5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0.64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엔 8경기에서 6⅓이닝 35타자를 상대로 1승, 15안타 5실점, 평균자책점 7.11을 기록했다. 정대현 답지 않게 너무 많이 맞고 있다. 이렇게 많이 맞아본 적이 없다. 신인이었던 2001년( 16⅔이닝 80타자 19안타)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NC 이태원까지도 정대현의 공을 적시타로 연결했다. 돌아온 정대현은 이태원에게 볼카운트 2B2S에서 스트라이크존 가운데 낮은 싱커(구속 125㎞)를 던졌다가 맞았다. 정대현의 실투는 아니었고, 이태원이 기다렸다가 떨어지는 걸 보고 잘 받아쳤다.
이러다보니 이제 타자들이 정대현과의 대결에서 심리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타석에 들어선다. 시즌 타율 2할의 이태원도 득점권에서 정대현을 두들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정대현은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의 분위기가 계속 되면 정대현은 타자와의 기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 정대현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선수는 안타를 맞아도 납득이 갈만한 선수에게 맞아야 한다. 제압해야할 타자에게 절대 출루를 허용해선 안 된다.
정대현은 당분간 중간 불펜에서 던지게 된다. 바로 마무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김시진 감독의 배려다. 마무리를 맡았다가 다시 무너질 경우 이번 시즌 회복 불가능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정대현이 자신감을 찾기 위해선 주자가 있는 위기 상황 보다는 이닝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구원 등판하는 게 더 낫다는 목소리가 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