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상상의 현실화, 이것이 'LCK포'의 실체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3-04-21 18:21


SK와 KIA의 2013 프로야구 주말 3연전 마지막날 경기가 2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렸다. 9회초 2사 KIA 이범호가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치고 최희섭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4.21/

용과 봉황, 그리고 유니콘. 엄청난 권능을 지녔지만, 전설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신수(神獸)들이다. 그 실체는 현실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도 상상하는 것 자체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상징들이다.

프로야구에도 그와 비슷한 존재감을 가진 키워드가 하나 있었다. KIA의 이범호(L)와 최희섭(C) 그리고 김상현(K)의 이니셜을 딴 조합, 바로 'LCK 포'다. 이 세 선수가 한 팀의 중심타선에 모였을 때, 과연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쏟아졌다. 덩달아 나란히 늘어선 이들의 이름을 라인업에서 확인한 팬들의 기대감 또한 엄청나게 치솟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 'LCK 포'가 제대로 위력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상상 속의 존재와 같았다. 그런데 이 'LCK 포'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세 선수의 조합이 이뤄진 지 3년 만에 그 실체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4월 21일, 인천 문학구장에 드디어 'LCK 포'가 현신했다.


SK와 KIA의 2013 프로야구 주말 3연전 마지막날 경기가 2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렸다. 7회초 2사 2루 KIA 최희섭이 우측담장을 넘어가는 2점홈런을 치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4.21/
베일 벗은 'LCK 포'의 압도적인 파괴력

이날 이범호와 최희섭 김상현은 각각 4번과 5번 그리고 7번 타순에 배열됐다. 애초 구상됐던 3-4-5 클린업트리오의 형태와는 다소 달라졌지만, 어쨌든 세 선수가 순서대로 늘어선 채 라인업에 등재됐다. 이범호는 올 시즌 주로 3번 타순에 나왔으나 옆구리 부상 중인 나지완 대신 4번 타자를 맡았고, 최희섭은 늘 나오던 대로 5번. 그리고 최근 타격감 회복으로 선발 자리를 되찾은 김상현은 7번이었다.

비록 'LCK 포'의 형태가 갖춰졌지만, 경기 초반까지만 해도 이들이 나란히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2011년에 이범호가 KIA 유니폼을 입은 시점부터 가동됐지만, 지난 두 시즌 동안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까닭. 4회까지 세 선수가 단 1개의 안타도 치지 못한 것도 기대감 저하의 요인이었다.

그런데 5회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 뒤늦게 시동을 건 'LCK 포'는 상상했던 모든 것을 현실에서 보여줬다. 우선 최희섭이 5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중월 결승 솔로홈런을 치며 시작을 알렸다. 그러더니 곧바로 김상현이 터졌다. 최희섭의 홈런 이후 6번 신종길의 중전안타로 된 무사 1루에서 김상현은 대형 우월 홈런을 날렸다.

최희섭의 활약은 침묵하던 이범호에게도 자극제가 됐다. 7회 최희섭이 또 우월 2점 홈런을 치자 이범호는 9회 2사 후 좌월 솔로홈런으로 화답했다. 마치 홈런으로 문답을 주고받는 듯, 'LCK 포'는 한 경기에서 모두 홈런을 터트리며 제대로 된 실체를 드러냈다. 세 선수 합작 4홈런, 6타점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이다.


SK와 KIA의 2013 프로야구 주말 3연전 마지막날 경기가 2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렸다. 5회초 무사 1루 KIA 김상현이 좌월 2점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관중에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4.21/

'LCK 포', 지금까지 왜 침묵했나

이들 세 선수가 한 경기에서 나란히 홈런을 터트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최희섭과 김상현, 이른바 'CK포'는 이전까지 곧잘 홈런을 합작했고, 2009년에는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냈었다. 'LCK 포'의 원조는 'CK포'였던 것이다. 최희섭과 김상현이 가장 최근 한 경기에서 홈런을 같이 친 것은 2010년 8월 3일 광주 LG전이었다.

여기에 2011년 일본에서 국내로 유턴한 이범호가 KIA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LCK 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세 선수 모두 한 시즌에 충분히 20홈런 이상을 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이들 세 명이 중심타선에 모이면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가에 대한 전망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당시 KIA 사령탑이던 조범현 감독 역시 이들 세 선수를 클린업 타선에 내세워 상대를 압박했다.

스타급 세 타자가 나란히 클린업타선에 들어선 것은 흥행 측면에서도 커다란 호재였다. KIA 팬들은 팀의 화력이 얼마나 막강해질 것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이들 세 명이 과연 몇 개의 홈런과 타점을 합작할 수 있을 지를 추측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LCK 포'가 제대로 가동되기 까지는 무려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부상이 가장 큰 악재였다. 세 선수 모두 2011년 이후 정상적인 몸상태로 풀시즌을 치른 적이 없다. 이범호는 햄스트링 부상, 최희섭은 허리 통증, 김상현은 손바닥 뼈 골절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그래서 이들은 2011년과 2012년, 본의 아니게 '상상속의 트리오'로만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부상에서 벗어나자 드디어 'LCK 포'도 제대로 된 위용을 보일 수 있었다. 지난 두 시즌의 실패를 겪은 이들 세 선수들은 하나같이 2013시즌 대비를 위해 스프링캠프에서 최상의 몸상태를 만들었다. 부상도 더 털어냈고, 의욕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용달매직'으로 불리는 김용달 타격코치의 부임 이후 각자의 약점들이 조금씩 개선되면서 드디어 갖고 있는 실력을 시원하게 뿜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코치는 "이범호는 그간 오른쪽 팔꿈치가 안좋아 왼팔에 의존하는 타격을 했는데, 그 점을 고친 후 좋은 모습을 되찾았다"고 설명했다. 최희섭 역시 최근 타석에서 약간 뒤로 물러선 덕분에 몸쪽과 바깥쪽 공 대처능력이 월등히 향상되 4경기 연속 홈런을 뿜어냈다. 김상현도 시즌 초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최근 주전으로 기용되면서 2009년의 호쾌한 모습을 되찾았다.

결과적으로 이들 'LCK 포'는 앞으로 한층 더 활발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간 각자를 괴롭히던 문제점들이 모두 개선됐기 때문이다. 'LCK 포'가 현실화되면서 KIA는 다른 팀에 비해 막강한 폭발력을 지니게 됐다. 더불어 프로야구 흥행 차원에서도 큰 호재가 생겼다. 이들이 또 홈런을 합작할 날이 기대된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