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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지휘한다면, 관중석의 사령탑은 응원단장이다. 경기의 흐름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면 분위기를 더욱 띄우고, 고전할 때는 분위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 가장 곤욕을 치르는 게 감독이지만, 응원 단상의 치어리더, 응원단장들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들은 감독이나 선수와 달리 팬들과 맨 앞선에서 직접 마주치는 '창구 직원'인 셈이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부산 개막 2연전을 마치고 4월 2일 KIA와 홈 첫 경기를 치를 때만 해도 연패가 그렇게 길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홍 단장은 "계속 팀이 패하자 분위기가 점점 경직됐다. 험한 욕설도 나왔는데 그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어린이도 있는데, 욕하지 말아달라. 괴도한 음주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사실 술에 취해 단상으로 돌진한 남성팬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중앙석에 있다가 응원석까지 달려온 한 남성팬으로부터 "이 XX야. 응원을 좀 더 잘해"라는 욕설도 들었다. 소속팀이 수비를 할 때는 응원을 쉬는데도 그랬다. 홍 단장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남성팬에게 뛰어가 "얘들을 생각해 욕은 좀 하지 말아달라"고 외쳤단다.
어이없는 플레이, 무기력한 경기가 계속됐지만, 한화 관중석에서는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라는 응원의 함성이 이어졌다. 홍 단장이 2010년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를 개사해 만든 응원가다. 비록 성적은 안 좋지만 한화팬으로서 변함없이 성원을 보내겠다는 다짐이 담긴 응원가다. 홍 단장은 "여자친구 어머니가 사우나에 갔다가 우연히 그 노래를 듣고 아이디어를 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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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연패 중이던 16일 만난 NC 다이노스전.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 모두 경기 초반 '멘붕'에 빠졌다. 상대가 신생팀 NC이니만큼 연패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1회에 3점, 2회에 1점을 내주고 0-4로 끌려갔다. 홍 단장은 "초반에 NC한테도 큰 점수를 주는 걸 보고 멘탈 붕괴가 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2009년 치어리더를 시작해 줄곧 한화와 함께 해 온 엄 팀장은 성적 부진에 의연했던 한화팬을 자랑했다. 그는 "누군가 팀 성적이 안 좋은데도 크게 흥분하지 않는 대전팬들을 '보살'이라고 했는데, 정말 우리 팬들은 충성도가 높은 것 같다"고 했다.
홍 단장은 경기 전에 선수를 만날 때마다 "오늘은 잘 될 겁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경기 전에는 "오늘은 꼭 이길 겁니다"를 외쳤고, 패하면 "내일은 꼭 이길 겁니다"라고 외쳤다.
16일 NC에 끌려가던 한화는 김태균이 2점 홈런을 터트려 역전에 성공했다. 홍 단장은 "몇 년 전 이도형이 끝내기 홈런으로 12연패를 끊은 적이 있는데, 그때 보다 더 짜릿했다. 2006년 준우승했을 때 그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홍 단장은 2006년 한화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엄 팀장은 2009년부터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다. 서울 출신인 홍 단장이나 부산에서 태어난 엄 팀장에게 한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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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어리더들은 경기 전에 대전구장 근처 식당에서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하고 응원을 준비한다. 시즌 첫 승을 하던 날 경기를 앞두고 엄 팀장과 팀원들은 평소처럼 이 식당을 찾았다고 한다. 엄 팀장은 "그날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가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을 내 응원하지. 밥을 많이 먹어야 이길 거야'라고 했다. 그날 다들 평소보다 식사를 더 했는데 정말 연패에서 탈출했다"고 했다. 엄 팀장은 "계속 밥을 많이 먹어야 우리 팀이 계속 이길 것 같은데, 체중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딜레마다"며 웃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짜릿했던 시즌 첫 승. 그날 엄 팀장은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는 "우는 관중들이 많아 가슴이 찡했다. 눈물을 흘리면 화장이 지워지기 때문에 함부로 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연패를 끊던 날 선수, 코칭스태프 못지않게 응원단 식구들에게도 축하 메시지가 빗발쳤다. 홍 단장은 "밤새도록 축하 문자가 이어졌다. 아마 100통은 받은 것 같다"고 했다.
3년 전인 2010년, 홍 단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한화가 우승을 하면 여자친구랑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한화는 우승은 커녕 바닥을 헤맸다. 결국 결혼을 하기 위해 목표치(?)를 수정했다고 한다. 홍 단장은 "이제 4강에만 들면 결혼을 하려고 한다. 올해 꼭 4강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