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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위원회(KBO)가 야구박물관을 기획하고 있다. 박물관은 과거의 정리이자, 미래의 디딤돌이라는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지난 10여년에 걸쳐 야구박물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KBO가 본격적인 준비에 나선 것이다. 야구박물관 준비위원회를 맡고 있는 이상일 KBO 총재 특별보좌역을 만나 그 동안의 상황을 들었다.
이 특보는 "원로분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박물관 취지와 의미를 설명해 드린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다"며 "하지만 평생에 걸쳐 모아놓은 자료를 내놓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분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기증받은 자료들은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과 올림픽공원 협회 자료실에 임시로 보관중이다. 50~6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김양중씨는 50년대 후반 국가대표 시절 필리핀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할 당시의 예방접종 카드와 글러브 등 용품, 신문 기사와 사진을 스크랩한 자료들을 보내왔다고 한다.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협회 심판원을 지낸 야구원로 민준기씨는 50여년에 걸쳐 모은 대회 깃발과 신문 기사 자료, 자신이 심판을 본 1000여 경기의 라인업 카드 등을 기증했다. 이 특보가 놀란 것은 당시 심판원으로 일할 때 받은 수당의 액수까지 꼼꼼히 적은 자료였다. 이 특보는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가 몇 박스 분량이더라. 받아서 협회 사료실에 보관해 놨다. 정말 고맙더라"고 설명했다.
이 특보는 한국 야구계의 최고령 원로인 송재옥씨 이야기도 들려줬다. 송씨는 1917년 생으로 김응용 감독이 지난 10월 한화 사령탑에 취임할 당시 인사 전화를 했을 정도로 야구계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평생 모은 야구 관련 자료가 1톤 트럭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이라고 했다. 이 특보는 "대전에 계신데 만나뵙고 자료를 받았다. 그거 나르는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만리장성을 옮기는 일 같더라. 일제강점기 시대의 야구기사와 사진 스크랩북이 700권 정도나 됐다. 그 양에 정말 놀랐다"고 소개했다.
KBO는 지난 2006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행사때 한국에 야구를 소개한 질레트 선교사의 가족을 수소문해 초대한 적이 있다. 질레트의 외손자인 로렌스 하바드씨를 초청했는데, 20세기초 질레트가 대한제국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편지, 당시 대회 트로피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 특보는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의미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를 하다 질레트 후손을 모셔오면 어떨까 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사무국과 연락을 취해 질레트의 외손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외조부가 남긴 자료들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해외파 선수들 자료도 수집중이다. 이 특보는 지난주 김병현, 김선우, 서재응 등의 에이전트를 맡았던 대니얼 김씨를 만났다. 메이저리그 첫 승 공인구같은 귀중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특보는 "김병현의 경우 기념품같은 것에 워낙 무관심한 스타일이라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말고는 보관중인 물품이 없다고 하더라. 대니얼 김씨가 다 가지고 있는데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특보는 "내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박물관 건물과 자료들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 한 번 찾으면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살아있는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