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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심했다. 투병 중인 동료를 돕기 위해 만사 제쳐두고 21일 목동구장에 모인 프로야구 선수들은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하늘은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눈을 뿌렸다. 하지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두환의 마음은 따뜻해졌을 것이다. 흰 눈 위에 모여진 동료들의 따뜻한 마음이 분명히 전달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식이 알려진 후 이두환을 위한 야구계의 온정의 손길이 모아졌다. 이날 경기도 그 연속선상에 있었다. 이두환의 이수중학교 동문인 임태훈(두산), 황재균(롯데), 심수창 허도환(이상 넥센), 장충고 동문인 이용찬 유희관 (이상 두산), 두산 전 팀 동료였던 김현수 이원석 양의지(이상 두산)와 이성열(넥센) 등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준하 오지호 김창렬 등 야구를 좋아하는 스타 연예인들도 빠지지 않았다. 연예인을 대표해 인터뷰에 나선 방송인 정준하는 "연예인 선수들이 이 경기를 위해 대부분 스케줄까지 조정했다. 경기를 치르지 못해 안타깝지만 이 마음이 이두환 선수에게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선수, 연예인 통틀어 이날 참석 예정자 중 결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날씨가 문제였다. 경기를 시작 1시간 30분 전인 10시30분 경부터 굵은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눈은 금세 목동구장 그라운드를 덮었다. 일찌감치 경기장에 나와 몸을 풀던 선수들은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봤다. 김현수는 "눈이 대수인가. 일단 경기를 시작하자"며 열의를 보였지만 부상의 위험이 컸다. 선수들은 "힘들게 찾아주신 팬들을 위해 홈런 레이스 등 이벤트 경기라도 펼치자"라고 의견을 모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눈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료들의 회상 "이두환은 리더십 있고 성실했던 친구"
선수들은 서로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안부들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두환의 얘기가 나오면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특히 이수중 동기동창이자 3총사로 절친한 임태훈과 김명성(두산)의 이두환에 대한 마음은 같했다.
임태훈은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다. 두환이가 나를 가장 친한 친구로 꼽아줘 너무 고맙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둔해보이지만 매우 성실하고 승부욕도 강했다. 리더십도 있는 친구였다. 언론에 알려지기 전부터 두환이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환이 생각만 하면 안타깝기만 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명성은 "이수중 동기 중 우리 셋만 프로에 남았다. 어제(20일) 태훈이와 따로 두환이를 찾아갔었다. 자선경기를 한다고 하니 잘하고 오라는 말을 했다. 사실 그 말도 하기 힘들어했다. 괜히 고통스러울 때 찾아 친구를 힘들게만 한건 아닌지 후회됐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덕아웃에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 김현수는 "핑계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눈물을 흘릴 것 같아 병문안을 아직 가지 않았다"며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두환이는 일찌감치 다른 사람들에게 게 사인을 해줄 정도로 유명했다"고 회상했다. 이수중 1년 선배 황재균은 "자신이 아픈데도 내 경기를 본 후 '그렇게 치면 어떡하느냐'고 전화를 걸어줄 정도로 밝은 친구"라고 말했다.
이두환의 이수중-장충고 시절 스승이자 현재 NC 스카우트를 맡고 있는 유영준 스카우트는 "다리를 절단했다는건 선수생활이 끝난 것 아닌가. 그래서 내가 두환이 부모님을 설득했고, 세상에 두환이의 투병 소식을 알렸다"며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 장충고 동문, 학부모, 학생들까지 모금운동을 해줘 너무 고마웠다"고 설명했다. 유 스카우트는 "어렸을 때 정말 야구를 잘했다. 이제 막 야구를 알고 잘할 때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동료들은 이날 자선경기를 진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일일호프를 통해 만회하기로 했다. 김광현(SK) 이용찬 임태훈, 이재곤(롯데), 양현종(KIA) 등 이두환과 함께 2006년 쿠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멤버들이 22일 오후 서울 양재동의 한 호프집에서 이두환을 돕기 위한 일일호프 행사를 열 예정이다.
목동=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