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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고 한탄만 할 수 있나."
서산 마무리 훈련을 끝마친 지난달 28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김 감독은 일본을 들러 미국으로 넘어가 이번달 중순이 지나서야 귀국할 예정이다.
8년 만에 현역 감독으로 복귀한 터라 12월에 예정된 각종 시상식과 연말 행사에 초대를 받았지만 미안함 마음을 무릅쓰고 외유를 강행했다.
김 감독이 이처럼 강행군을 자청한 것은 '똘똘한 용병 구하기'를 위해서다.
구단과 김 감독은 실시간 연락체계를 갖춰놓고 김 감독이 현지에서 마음에 드는 '진주'를 발견하면 구단 운영팀이 곧바로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감독이 직접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겠다고 나선 경우는 드문 일이다. 보통 운영팀의 스카우트 담당자들이 먼저 현장 확인을 거치고 경기 동영상과 스카우팅 리포트를 코칭스태프에 보고하면 이를 토대로 감독이 최종 낙점을 하는 게 용병 영입 방식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다른 팀 젊은 감독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한발 먼저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 (선)동렬이도 없고∼, (이)종범이도 없고∼"는 김 감독의 전매 특허 유행어다.
해태 감독 시절 1997년 시즌을 마친 뒤 당시 선수였던 선동렬에 이어 이종범마저 해외로 진출하자 장탄식처럼 쏟아낸 말이다. 당시 해태의 핵심전력 2명이 빠졌기 때문일까.
해태는 두 스타가 떠난 이후 '해태 왕조의 몰락기'를 맞았다. 1998년 5위, 1999년 7위, 2000년 6위였다. 김 감독의 해태 우승신화도 1997년 9번째 우승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한화에서 새출발을 다짐한 올겨울 "OOO도 없고∼"를 또다시 외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에는 "(류)현진이도 없고∼, (박)찬호도 없고∼"다.
류현진과 박찬호 모두 객관적인 기량이나 이름값에서 한화의 핵심 전력이다. 15년 전과 비슷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짓궂은 역사의 수레바퀴다.
하지만 김 감독은 1998년 시즌의 아픔까지 똑같이 겪고 싶지 않다. 김 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마운드가 취약한 가운데 주요 전력들이 줄줄이 빠졌다. 그렇다고 한탄만 할 수 없지 않은가. 뭐라도 살 길을 찾아봐야지"라고 말했다.
외국인 투수에 운명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김 감독의 발걸음이 다급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올시즌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환한 바티스타가 재계약을 한 이상 선택의 폭은 단 1명 뿐이다.
김 감독은 정말 쓸만한 외국인 투수를 발굴한다면 지금 한화가 처한 위기상황도 뒤집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 그래서 직접 살피고, 심사숙고하고, 선택의 묘수를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삼성 감독 시절 지도자 생활 이후 처음으로 직접 용병을 골랐다가 시범경기 도중 부상하는 바람에 써먹지도 못한 아픈 추억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구호는 마무리 캠프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라고 더욱 힘주어 외치고 있다.
더구나 한화는 최근 몇 시즌 동안 외국인 선수 효과를 가장 누리지 못한 팀이었다. 김 감독의 '외유'가 돌파구를 찾게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