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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의 공식을 무너뜨리다.'
SK를 제외한 나머지 7개 구단 팬들은 지난 2007년 이후 강자로 등극한 SK에 반감을 갖고 있다. 단순히 잘해서가 아니다. SK가 잘해서 시기하는 시선도 있겠지만, SK엔 분명 그들이 원하는 야구는 없다.
SK만의 특별함이 이런 불편한 시선을 만들었다. SK는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키는 야구를 펼친다. 타선은 힘든 상황에서도 1점을 짜내고, 마운드에선 질적·양적으로 훌륭한 불펜진이 어떻게든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다. 아마 '빈틈이 없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질높은 무결점 야구를 하기 때문에 '근의 공식 야구'라는 소리도 듣는 것이다. 수학 교과서의 '이차방정식 근의 공식'처럼 어떤 수를 대입해도 답이 명쾌하게 떨어지듯이 컴퓨터같이 짜여진 야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에서 영원 불변한 근의 공식도 야구판에서는 한계를 맞은 것같다. 롯데가 17일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SK의 무미건조한 근의 공식 야구를 침몰시켰다.
롯데 타선 특유의 끈끈함으로 SK의 최고 강점을 허물어뜨렸으니 3차전의 희망도 그만큼 밝아진 느낌이다.
철벽 방어망을 무너뜨리다
SK의 '근의 공식 야구'의 핵심은 엄정욱-박희수-정우람으로 이어지는 막강 불펜진이다. 선발 투수가 최대 6회 정도 막아주고 내려가면 이들은 어김없이 차례로 나와 7, 8, 9회를 틀어막는다. 전날 1차전에서 2대1 박빙의 리드를 지켜낸 것도 이들 3총사의 무실점 방어였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나란히 평균자책점 '0'를 자랑하던 그들도 신은 아니었다. 이날 2차전에서는 그저 그런 불펜이었다. 예정대로 4-1로 앞서던 7회 마운드에 오른 엄정욱은 내야안타와 야수 에러로 순식간에 1, 2루를 허용하며 흔들렸다. 롯데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문규현과 김주찬은 희생타와 적시타를 연달아 뽑아내며 엄정욱을 조기에 강판시켰다. 첫 단추가 엇나가자 세 번째로 등판한 박희수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 박준서의 대타로 등장한 조성한이 전날의 교체 아웃 수모를 만회하기 위해 중전 적시타를 뽑아내며 박희수에게 선방을 날렸다. 뭐니뭐니 해도 이날 최고의 장면은 연장 10회초. SK는 9회를 무사히 넘긴 막강 마무리 정우람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정우람은 김주찬을 고의4구로 골라내며 2사 만루를 허용하는 대신 정 훈을 타깃으로 삼았다가 어이없는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결승점의 희생양이 됐다.
명품수비가 빠지니 실책까지…
1차전에서 SK의 수비는 순도 100%였다. 1-1 동점으로 맞은 6회 잘 던지던 에이스 김광현의 갑작스런 난조, 그리고 손아섭의 적시타로 동점이 된 뒤 1사 1, 3루 위기가 이어졌다. 박준서의 타구는 '3-유'간으로 빠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베테랑 중의 베테랑 유격수 박진만은 노바운드로 타구를 다이빙캐치해 2루까지 간 1루주자 홍성흔까지 잡아냈다. 순식간에 이닝 종료. 그림같은 이 수비 하나가 1차전의 운명을 바꾼 숨은 공신이었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명품남' 박진만을 교체한 게 패착이 됐다. 이만수 SK 감독은 6회말 조인성의 2타점 2루타로 4-1까지 달아난 뒤 2사 2루의 기회가 계속되자 이날 1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박진만 대신 이재원을 대타로 투입했다. 이재원이 볼넷을 골라 출루하자 대주자로 최윤석을 다시 기용했다. 추가 득점없이 6회가 끝난 뒤 재앙이 닥쳤다. 7회 수비에서 박진만을 대신한 최윤석의 유격수 자리에서 구멍이 난 것이다. 최윤석은 첫 타자 전준우의 투수 뒤쪽 강습타구를 잡지 못했다. 실책성이었다. 곧이어 황재균의 유격수 왼쪽 땅볼에서는 포구 에러를 하는 바람에 위기를 자초했다. 당시 마운드를 지키던 엄정욱은 이후 연속 2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철의 방어벽을 무너뜨리게 한 결정타였다. 롯데 타자들이 박진만이 빠진 유격수 위치를 집요하게 공략한 성과이기도 했다.
이제 SK의 공식 야구는 웃다가 울게 된 꼴이 됐다. 그럼 다음은? 3차전 승부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