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대전구장에서 벌어진 한화-두산전은 한화 선발 박찬호가 화제의 중심이었다.
올시즌 5승5패를 기록중이던 박찬호는 두산에 유독 강했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 전까지 두산전 3차례 등판했는데 2승무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결국 징크스는 깨졌다. 두산은 제대로 설욕했다. 그냥 설욕이 아니라 박찬호에게 올시즌 한 경기 최악의 성적이란 수모까지 안겼다.
두산 천적의 분수령에서…
박찬호는 두산을 만나면 기분이 좋았다. 지난 4월 12일 한국무대로 복귀한 이후 첫 등판에서 두산을 상대했다가 단박에 첫승을 챙겼다. 6⅓이닝 4안타 2볼넷 5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다. '불혹의 나이에 한국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와 '그래도 메이저리그 출신이다'는 기대가 교차했던 경기였다. 일단 우려를 말끔히 털어내는데 성공했고, 박찬호 열풍의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한 호투였다. 5월 17일 두산과의 두 번째 대결에서는 더욱 빛났다. 당시 박찬호는 시즌 최다 7이닝 동안 6안타 5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챙겼다. 한국 복귀 이후 최고의 피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두산전 첫승 이후 5경기 동안 승리없이 2패만 기록하고 있던 박찬호로서는 두산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대결인 6월 22일 경기에서 불길한 조짐이 감돌았다. 4이닝 4안타 3볼넷 3탈삼진 4실점으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한화 타선이 역전(5대4)한 덕분에 패전을 면했지만 두산 킬러의 명성에 살짝 금이 갔다. 그래도 두산전 3경기에서의 피안타율이 2할1푼9리로 넥센(0.189) 다음으로 낮을 만큼 자신감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7일 진정한 두산 킬러가 걸린 분수령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4이닝 동안 8안타(1홈런) 1탈삼진 3볼넷 8실점으로 한 경기 최저 성적이다. 종전 최저 성적은 5월 11일 롯데전 4이닝 6실점(5자책점)이었다. 두산을 상대로 천당과 지옥을 번갈아 맛본 것이다.
김현수에게 당했다
이날 경기를 시작하기 전 두산 김진욱 감독은 선수들에게 일일이 "대구구장과 대전구장 중 어디가 더 덥냐?"고 물었다. 최근 8개 구장 가운데 가장 더웠던 대구 원정을 다녀온 김 감독은 선수들의 답변 방식에 따라 이날 컨디션을 가늠할 생각이었다. 대전구장이 오히려 덜 덥다는 대답을 하면 그만큼 지치지 않았고, 자신있다는 표현으로 해석하려는 것이었다. 김현수의 차례가 돌아왔다. 김현수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대구와 대전구장 가운데 선택하라고 했는데 "잠실구장이 더 덥습니다"라고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김 감독은 무릎을 쳤다. 대구든 대전이든 더위 따위는 문제될 게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기대해도 되겠다고 했다. 김 감독의 예감이 맞았다. 이날 박찬호를 괴롭힌 주인공은 김현수였다. 1회초 오재원과 고영민은 범타로 처리하며 손쉽게 출발하려던 박찬호에게 허를 찌르는 솔로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아냈다. 이후 박찬호는 3이닝 동안 삼진 대신 땅볼 위주로 요리하며 잘 버텼다. 4말 타선의 도움으로 3-1 역전에 성공, 승리요건을 눈 앞에 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5회초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경민과 고영민의 2타점 적시타로 3-5로 뒤진 무사 2, 3루에서 확인사살에 나선 이가 김현수였다. 김현수는 우익수 앞으로 뻗는 2타점 적시타로 점수차를 크게 벌렸고, 곧바로 박찬호를 강판시켜 버렸다. 김현수에게는 단단히 벼르고 벼른 활약이었다. 두산의 간판타자였지만 박찬호 앞에서 유독 약했던 게 김현수다. 김현수는 이전 3경기 박찬호와의 대결에서 9타수 무안타 땅볼 6개로 철저하게 잡혔다. 두산 선발 라인업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8월 들어 5경기에서도 17타수 3안타(타율 1할7푼6리)로 시즌 평균 타율(6일 현재 3할1푼3리)에 크게 못미치게 부진했던 김현수다. 하지만 박찬호와의 절체절명 대결에서 그동안의 징크스와 슬럼프를 동시에 털어버리며 만세를 불렀다.
대전=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