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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응이형, 조금만 버텨 주세요."
KIA 야수들은 서재응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무언가 빚을 진 듯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서재응이 마운드에서 호투를 할 때 타선이 침묵하는 바람에 승리를 안겨주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서재응은 무려 10차례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지만, 이 중에서 승리로 연결된 것은 단 3번 뿐. 오히려 퀄리티스타트를 하고도 패전투수가 된 것이 5차례로 더 많았다.
일반적으로 선발투수가 최소 6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키며 3점 이하를 내주는 퀄리티스타트를 했다고 하면 승리투수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상대 투수가 에이스급이거나 그날따라 제구력이 뛰어나 타선이 3점도 못 뽑아준다면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 선발이 경기 중반까지 3점 이하를 내줄 경우 타선의 집중력도 살아난다.
이러한 문제는 타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특히 팀의 베테랑 투수인 서재응이나 에이스 윤석민이 경기 후반까지 호투하며 투혼을 보여줄 때 점수를 뽑아주지 못하는 경우 '미안함'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3일 잠실 두산전에서의 패배도 모양새는 경기 후반 불펜진의 난조였지만, 만약 KIA 타선이 1~2점 정도를 더 뽑아줬다면 역전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KIA 타자들은 4일 경기를 앞두고 따로 결의를 다졌다. 주장인 포수 차일목의 주도로 이뤄진 이 결의의 주제는 '서재응 구하기'였다.
차일목은 "서재응 선배가 올해 정말 잘 던지고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너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야수들끼리 오늘만큼은 조금 더 집중해보자고 결의를 다졌다"고 밝혔다. 이런 결의는 경기 시작전부터 서재응에게 전달됐다. "선배님, 오늘은 우리가 꼭 점수 많이 낼게요. 힘내십쇼". 이 말을 들은 서재응은 한층 집중력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실제로 성공했다. 6회까지 무득점에 그쳤던 KIA 타자들이 7회에 대거 6점을 뽑아 역전을 이뤄내며 서재응에게 승리투수 요건을 안겨준 것이다.
서재응은 "경기 전부터 야수들이 뭔가 준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기 중에도 수시로 후배들이 기운내라는 격려를 해주더라.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정말 큰 힘이 된다"면서 동료들의 깜짝 프로젝트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서재응이 39일만에 시즌 5승째를 달성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이같은 동료들의 깜짝 지원 프로젝트가 숨어있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