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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에이스 윤석민.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는 그가 유독 부산에만 오면 작아진다. 윤석민이 사직구장 징크스를 털어내지 못하고 롯데 타선에 뭇매를 맞았다. 윤석민이 10일 부산 롯데전에서 3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6안타 5실점하며 시즌 3패째를 떠안았다. 2010년 홍성흔, 조성환 사구 사건 이후 3경기에 등판한 평균자책점이 7.59가 됐다.
지난 시즌에는 우연의 일치인지, KIA의 의도가 섞여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윤석민이 롯데전에 등판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5월28일 광주 KIA전에 딱 한 차례 선발로 나서 패전투수가 됐다. 9월 1일 부산 경기에서는 중간계투로 2이닝을 소화했다. 당시 부산 경기를 앞두고 홍성흔, 조성환이 윤석민을 향해 "개의치 말고 씩씩하게 던졌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윤석민도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사직구장의 악몽을 털어낼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게 다시 찾은 사직구장. 완벽한 투구로 사직구장 트라우마를 날려버리고 싶은게 선수로서의 당연한 욕심이었을 것이다.
관건은 몸쪽 승부였다. 윤석민 본인도 지난해 롯데전을 앞두고 "솔직히 롯데전에서 몸쪽 공을 던지기 부담스럽다"고 실토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시간도 흘렀다. 윤석민 본인도 지난 시즌 최고의 한해를 보내며 한층 더 성숙한 투수로 거듭났다.
하지만 사직구장에서, 몸쪽 승부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윤석민은 롯데 타선을 상대로 과감한 몸쪽 승부를 시도했다. 문제는 아무리 뛰어난 투수가 던진 공이라도 몸쪽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 통타를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석민이 5실점한 3회 투구내용을 보자. 특히 1-1이던 1사 1루 상황서 김주찬에게 맞은 결승 투런포가 뼈아팠다. 초구 커브가 몸쪽 높게 들어왔다. 2구째는 바깥쪽 직구가 빠졌다. 볼카운트 2B0S 상황서 카운트를 잡기 위한 137㎞짜리 슬라이더가 몸쪽 높은 곳으로 쏠렸다. 실투였다. 손아섭에게 안타를 허용한 후 강민호에게 볼넷을 내줄 때도 마찬가지. 몸쪽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어 등장한 조성환에게 허용한 안타도 초구 체인지업이 몸쪽 높은 곳으로 몰렸고 황재균에게 쐐기 적시타를 허용할 때도 몸쪽을 겨냥한 슬라이더가 한가운데로 몰리며 통타당하고 말았다.
물론 롯데 타자들이 윤석민의 공을 잘 공략한 공도 있다. 애초에 바깥쪽 보다는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에 적극적으로 스윙을 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제구가 잘 됐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롯데전 몸쪽 승부에 대한 트라우마가 윤석민에게 아직 남아있던 것일까.
결국은 넘어야 할 산, 롯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재 윤석민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우완투수다. 하지만 윤석민이 더욱 확실한 에이스로 발전하려면 롯데라는 산을 넘어야하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 없다.
예를 들어보자. 단기전에서는 에이스의 존재 유무에 따라 각 팀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가장 중요한 첫 경기에서 기선을 제압해줄, 그리고 시리즈를 확실히 매조지해줄 수 있는 에이스 투수 한 명에 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민은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투수다. 하지만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만난다고 가정해보자. 롯데 타자들이 윤석민을 특별히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면 에이스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미래를 위해서라도 윤석민은 롯데 타선을 상대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롯데를 상대로 멋진 승리를 거두는 일이다.
KIA는 9일 경기에서 연장승부 끝에 4대3으로 승리하며 지긋지긋하던 롯데전 12연패를 끊었다. 그만큼 야구라는 스포츠가 특정 팀, 특정 선수를 상대로 심리적 위축을 받으면 그 슬럼프가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KIA 팀은 롯데라는 벽을 넘었다. 이제 윤석민 차례다.
부산=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