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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상에게서 윤석민의 향기가 난다?
유원상은 불펜에서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22경기서 8홀드 2세이브에 평균자책점 0.88. 어떤 상황이든 길게 던지는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해, 어느덧 이기는 경기엔 무조건 나오는 필승조가 됐다. 8개 구단 불펜투수 중 가장 많은 30⅔이닝을 소화. 봉중근이 연투가 가능해지는 다음달까지는 봉중근과 돌아가며 뒷문도 지키는 중이다.
이제야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찾은 느낌이다. 유원상도 짧은 시간에 모든 걸 쏟아내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선발로 던질 때와는 달리,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필요도 없다. 이젠 자신있는 공만 던진다. 직구와 슬라이더, 두가지의 단순한 레퍼토리가 먹혀들고 있다. 간간이 커브를 섞긴 하지만, 보여주는 정도일 뿐이다.
유원상은 당시 타구를 더듬는 실책으로 첫 타자 오재원에게 출루를 허용했다. 이후 이성열에게 적시 2루타를 맞고 1점차로 쫓겼다. 기습견제로 승리를 확정지은 뒤,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다. 다음날 그는 "내가 위기를 자초한 상황이라 더욱 압박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마무리의 압박을 제대로 느낀 것이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힘이 좀더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그 슬라이더는 분명 위력적이었다. 당시 두산 김진욱 감독은 "유원상의 슬라이더는 직구와 궤적이 똑같다. 직구와 비슷한 구속,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는데 방망이가 안 나갈 수가 없다"고 증언했다. 윤석민의 고속슬라이더와 비교를 해달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래도 윤석민은 그 슬라이더에 낙폭까지 조절할 수 있다. 더 떨어지거나, 유원상처럼 날카롭게 들어가거나. 자유롭게 조절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유원상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내 슬라이더는 석민이의 슬라이더에 비하면 낙폭이 크지 않다. 컷패스트볼에 좀더 가깝다"고 했다. 유원상은 한화 시절 한용덕 코치에게 전수받은 그립으로 슬라이더를 던진다. 공을 직구와 반대로 잡고, 직구와 동일한 팔스윙으로 던지면서 릴리스 순간에 공을 찍어 누른다. 당시 다른 한화 투수들은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유원상만이 고속슬라이더를 장착한 것이다.
그립은 다르지만, 유원상의 슬라이더는 조금씩 윤석민의 것을 닮아가고 있다. 이후 두 경기에선 130㎞대 중반의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많은 경기에 나서게 되면서, 마무리가 아닌 그 앞에 나왔을 때 주로 이 공을 쓴다. 완급조절을 위해 힘을 조절하기 시작하다 낙폭까지 커졌다.
이 두 종류의 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섞어 던지게 된다면, 유원상은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투수가 될 것이다. '윤석민급' 불펜투수가 되는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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